물질 표면에선 물질 성질 바뀐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독일의 게르하르트 에르틀 교수(71·막스플랑크 프리츠하버연구소 명예소장)한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 한림원 노벨화학상 심사위원회는 11일 물질 표면에서 일어나는 촉매의 화학반응 원리를 원자·분자의 수준에서 규명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에르틀은 ‘표면화학’의 토대를 세운 인물로 손꼽힌다. 표면화학은 물질 표면에서는 물질이 그 내부와 상당히 다른 화학적 성질을 띠게 되는 특이한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이래 철 표면에서 질소와 수소가 왜 쉽게 결합해 암모니아를 생성하는지, 자동차 배기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백금 촉매와 반응해 어떻게 이산화탄소로 변하는지에 관한 독보적 실험 결과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특히, 공기 중에선 질소가 매우 단단한 삼중결합 분자를 이루지만 철 표면에 붙으면 원자 단위로 낱낱이 떨어지고, 역시 낱개로 쪼개진 수소 원자와 손쉽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정밀한 실험을 통해 관측했다.
에르틀은 새 촉매 물질을 개발하지는 않았지만 산업계에서 이미 널리 쓰이던 요소비료 제조공정과 백금 촉매의 화학반응을 원자·분자 수준에서 밝힘으로써, 표면화학 작용의 이해와 화학공정 발전에 기여했다. 성층권의 오존층이 얼음 결정 표면에 작용하는 프레온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연료전기가 어떻게 작동하고 쇠가 어떻게 녹스는지도 물질 표면의 화학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노벨 심사위원회는 특히 에르틀이 이런 발견에 다다르고자 새롭고 정교한 실험기법들을 쓴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철 표면에서 일어나는 질소·수소 원자만의 작용을 살피려 다른 모든 기체들을 없애는 ‘고진공’의 청정실험실을 만들었으며, 표면에서 일어나는 원자·분자 수준의 작용을 광전자분광기로 관측하는 기법들을 활용했다.
에르틀의 제자인 이순보 성균관대 교수(화학)는 “아주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선생은 성격이 부드럽지만 어떤 일을 시작할 땐 결코 미루지 않고 즉시 처리하는 걸로 아주 유명했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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