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윌슨 등 취임 5~6년 뒤 영예
고르바초프·만델라·아라파트 등 수상
고르바초프·만델라·아라파트 등 수상
노벨평화상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라는 수상자 선정 기준 때문에 유명 정치인이나 평화운동가가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1906년)와 우드로 윌슨(1919년)에 이어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노벨평화상의 영예를 안았지만, 루스벨트와 윌슨의 경우 각각 취임한 지 5~6년이 지난 때였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뒤인 2002년 세계 평화와 인권 향상 노력을,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007년 지구온난화 방지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밖에도 정치지도자의 수상 경우는 많다. 빌리 브란트 옛 서독 총리(1971년)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1990년)은 동서 화해 분위기 조성과 냉전체제 해소 노력으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1993)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2001)은 인종차별 철폐와 세계 평화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 때인 2000년 한반도 긴장 완화 및 평화 정착 노력으로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세계 최대의 분쟁지역인 중동은 역설적으로 노벨평화상의 텃밭이 됐다. 1978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힘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1994년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각각 양국간 평화협상과 오슬로 평화협정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깜짝 수상자’도 많았다.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과 레득토 베트남 정치국원은 1973년 베트남 평화협정을 이끈 공로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레득토는 키신저가 베트남 침공의 전범이라고 항의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1989년에는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노벨상을 받아 티베트 독립시위를 무력진압한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1991년엔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군부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끝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이란의 여성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가 선정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수상을 점치던 관측통들을 놀라게 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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