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마일섬 원전 냉각탑. 권태호 기자
스리마일 방사능 유출 32년
당시 펜실베이니아 3분의1 ‘엑소더스’ 겪고도…
미 보고서 “원전당국, 위험가능성 과소평가”
당시 펜실베이니아 3분의1 ‘엑소더스’ 겪고도…
미 보고서 “원전당국, 위험가능성 과소평가”
1979년 3월28일, 스리마일 발전소의 제2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 융해 사고가 일어났다. 원자로 온도가 급상승해 노심 절반 이상이 녹았다. 다행히 폭발 직전에 냉각펌프가 작동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상당한 양의 방사능 누출은 피하지 못했다. 당시 인근 주민 20만명이 대탈출 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지금 스리마일 원전 주변은 오래된 집들이 강 건너편에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고, 강에는 보트놀이, 낚시 안내판도 보이는 등 평화롭기만 하다. 미들타운은 인구 1만명의 소도시로, 대부분 주민들이 이곳에서 나서 살아가는 오래된 마을이다. 찰리 앤더슨(47·병원 직원)은 “15살이었다. 학교에서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집으로 달려왔다. 부모님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마을을 떠나는데 평소에는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2차선 도로가 꽉 막혔다. 1주일 정도 호텔에 머물다 돌아왔다”며 사고 당시를 들려줬다. 그러나 앤더슨은 “지금? 사고가 다시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들 대부분 생각이 비슷했다. 강 건너 냉각탑에서 피어나는 허연 뭉게구름, 쌍둥이처럼 그 옆에 서 있는 ‘좀비’ 냉각탑은 어릴 적부터 봐온 익숙한 고향의 풍경일 뿐이다. 원전 인근에서 만난 62살 게리 피터슨과 멜레인 거트는 이곳에서 자란 소꿉친구로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나, 지금도 친구다. 사고 당시 멜레인은 시청 공무원이었다. 게리는 “놀고 있었지”라고 멜레인이 대신 말해준다. ‘그날’, 멜레인은 “딸아이를 찾기 위해 유치원으로 달렸다. 사람들 모두 패닉 상태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른 채 무작정 도망갔다”고 말했다. 게리는 “위험지역은 ‘원전 인근 10마일’이라고 했지만, 펜실베이니아주 3분의 1이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펜실베이니아(11.6만㎢)는 남한(10.0만㎢)보다 넓다.
그러나 이들도 지금은 “괜찮고, 괜찮을 것”이라며 “일본은 지진이 원인이지만, 이곳은 사람의 실수였다.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사고 이후 도시를 떠난 사람은 없느냐’고 물어보니, “있었겠지만, 미미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미들타운의 인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로버트 리드 미들타운 시장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일본 원전 사고가 스리마일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지만, 스리마일 원전은 1979년 그때보다 훨씬 더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스리마일 원전 훈련센터에서 실내 작업을 하던 브래드 설리번(31·건축공)은 원전 사고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때 2살이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 역시 ‘안전’을 자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사능 유출보다 실업이 더 무섭다”며 “이 도시에는 저 원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스리마일 원전은 인근 8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한다.
지금도 미들타운은 여러 개의 원전 대피소를 운영하고 있고, 전화번호부에는 원전 사고시 탈출경로를 그린 지도가 붙어 있다. 또 주민 1만명인 이곳에 3만명에게 투여할 수 있는 요오드화칼륨(방사선 피폭 치료제)도 비축돼 있다. 원전 운영회사는 지방정부 당국과 협조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비상대피 훈련을 실시한다. 오는 4월12일에도 훈련이 예정돼 있다. 방사선 노출 영향 조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30군데의 방사선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해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매년 사고가 일어난 시점인 3월28일 새벽 4시를 기해 원전 반대론자들이 발전소 앞에서 사고 이후 발견된 등 굽은 물고기, 돌연변이 채소 등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년 전 펴낸 보고서에서 “원전 인근 5마일 안에 사는 3만2000명의 주민을 조사한 결과, 암 발생 이상증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는 “사고 이전에 원자력 전문가들은 방사능 안전을 자신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1979년 3월28일, 무너졌다”며 “활동가들은 원전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원전 당국도 위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가 보여주듯, ‘원전의 평화’란 불안한 평화다. 주민들은 어쩌면 그걸 잊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리마일 사고 뒤, 일본은 미 원전 당국에 180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20명의 핵 기술자들이 10년 동안 스리마일 섬 주변에 살면서 스리마일 원전의 구조, 사고 원인, 대처 방법 등을 철저히 연구했다. 1989년 일본 기술자들은 섬을 떠나면서 발전소에 10여그루의 벚꽃 나무를 심었다. 해마다 스리마일 사고가 일어난 3월28일께, 벚꽃은 핀다.
미들타운(펜실베이니아)/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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