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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당시 군인들이 생체로봇…삽으로 방사능 오염물질 퍼내”

등록 2011-04-26 15:36

게오르그 레핀(80·사진) 박사
게오르그 레핀(80·사진) 박사
[체르노빌 원전재앙 25년]
방사능 수치 낮게 속여 수습요원들 들여보내
오염물질 제거 100만명 투입, IAEA “최소 4000명 숨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도 완전한 복구 할 순 없을 것”
수습현장 지켜본 과학자 레핀 박사

1986년 4월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 게오르기 레핀(80·사진) 박사는 이웃 나라인 벨라루스 민스크의 폴리텍 연구소에서 원자력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방사성 물질이 가득 찬 밀폐용기에 금속을 넣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지난 23일 민스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그는 “체르노빌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사고 수습요원을 자원했다”고 회고했다. “한 달 월급으로 자동차 두 대를 살 수 있는” 대우 때문이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방사성 물질 제거를 위한 과학자들의 아이디어와 지휘가 필요했다. 그는 소련에서 원자로를 잘 아는 몇 안 되는 학자였다.

5월 초 체르노빌에 도착했을 때, 500여명이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4호기 주변의 방사능을 막아주는 두꺼운 납유리로 봉인된 상황실에서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현장을 지휘했다.

당시 4호기에서 터져 나온 방사성 물질은 3호기 왼쪽 지붕 쪽에 쌓여 있었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뜨거운 불’이었다. 그는 로봇으로 오염물질을 긁어모아 다시 4호기 원자로 안으로 넣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강한 방사능 때문에 로봇은 작동하지 않았다.

숫자로 본 체르노빌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묘수를 짜낼 시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군인들은 납으로 된 앞치마와 삽을 지급받았다. 레핀 박사는 “군인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 삽으로 오염물질을 퍼냈다”며 “그들은 ‘생체 로봇’이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볼펜만한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다녔다. 작업자의 연간 피폭 허용치는 5R(뢴트겐)이었다. 하지만 방사능 측정기에는 수시로 25R, 50R 같은 숫자가 떴다. 몰래 가져간 카메라 필름이 방사능에 타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방사능 검사관도 수습요원들을 현장에 들어가게 하려고 수치를 낮게 적었다”며 “그런 관행에 대해서 말하는 건 금기시됐다”고 말했다.

1986년에서 1992년까지 연인원 60만~100만명이 발전소 안팎의 오염물질 수거 작업 등에 투입됐다. 이들을 ‘청산인’(리퀴데이터)이라고 부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보수적으로 추정한 바로는 약 4000명이 숨졌고, 이 보고서에 반박하는 민간 과학자들이나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등은 사망자가 수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콘크리트로 봉인됐다. 사람들은 이를 돌로 된 관, 즉 ‘석관’이라고 부른다. 일곱 달 만에 허겁지겁 씌워진 석관은 지금 다시 붕괴 우려가 제기돼 보강해야 한다. 그는 “로봇 또한 흩어진 방사성 물질을 모으기엔 한계가 있다”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도 완전한 복구를 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반경 30~40㎞ 바깥은 나중에 일부 거주가 가능해도, 안은 계속 방사능 낙진이 남아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레핀 박사는 매년 요양시설에 다니면서 방사성 물질 저감 치료를 받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손을 떨지만 건강한 편이다. 레핀이 사진을 꺼내 보여준 동료 의사는 몇 년 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민스크(벨라루스)/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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