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신규 감염자 추이
‘속수무책’ 3천만명 숨졌지만 감염 증가율 감소
줄기세포 치료 성공적…유엔, 다음주 대책논의
줄기세포 치료 성공적…유엔, 다음주 대책논의
1981년 6월5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로스앤젤레스의 동성애자 5명”이 폐렴에 걸렸는데 면역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증상을 보인다고 발표했다. 인류를 괴롭히는 가장 심각한 전염병인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이 처음 발견된 순간이었지만 당시 재앙을 내다본 사람은 없었다. 3~4년이 지나고서야 이 병을 일으키는 게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라는 사실이 규명될 정도로 인류는 새로운 질병에 깜깜했고 속수무책이었다.
에이즈는 현재까지 2500만~3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매일 바이러스 감염자가 7100명에 이르고, 2009년에 태어난 아이들 중 37만명이 부모한테서 이 질병을 물려받았다. 에이즈는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창궐하면서 빈곤과 질병이 동시에 한 지역을 휩쓰는 비극적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에이즈의 기세가 꺾였다’는 희망 섞인 진단이 나오고 있다. 감염자는 증가하지만 증가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1997년에 320만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신규 감염자는 2009년에는 260만명으로 줄었다. 2005년에 220만명으로 최고에 이른 사망자 수는 2009년 180만명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신약 개발과 예방법 보급, 완치법 개발 예상과 맞물려 완전 퇴치 전망까지 낳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일 “에이즈 감염이 더 이상 사형 선고가 아니게 됐다”고 표현했다. 특히 지난해 말 줄기세포 치료가 성공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과학계는 흥분에 빠졌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저항력을 보이는 유전자 변이를 지닌 줄기세포를 2007년에 이식받은 환자가 이후 약물 없이도 건강하게 지낸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또 바이러스 증식만 막는 줄로 알았던 항레트로바이러스제가 일부 예방 효과도 지녔음이 입증됐다. 현재의 바이러스 증식 억제 단계에서 완전한 치료제나 백신 개발로까지 나아갈 단초가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엄청난 목숨들이 사라지는 상황이라 일부 의학적 발전에 환호하고만 있을 문제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돈이라는 문제가 남는데, 현재 약물 처방이 필요한 1200만명 중 500만명만이 약물을 제공받고 있다. 완치제나 백신 개발도 확언할 단계는 아니다. 세계 에이즈 연구자들의 기구인 에이즈소사이어티의 버트런드 오도인은 <아에프페>(AFP) 통신 인터뷰에서 “과학자들은 더는 불확실한 약속을 하기 싫다”고 말했다.
유엔에서는 8일부터 30개국 이상의 정상들이 모여 에이즈 대책을 논의한다. 유엔은 현재 160억달러(약 17조원)가량인 세계 에이즈 퇴치 기금이 2015년에는 220억달러까지 증액돼야 한다며 각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전자현미경으로 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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