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 ‘학살’ 반성없고
피해자는 처벌 미흡 불만
국제전범재판소 권위 ‘흔들’
“아프리카인 처벌에 치중”
이라크전쟁 등 책임 안물어
승자 정의만 존재 논란도
피해자는 처벌 미흡 불만
국제전범재판소 권위 ‘흔들’
“아프리카인 처벌에 치중”
이라크전쟁 등 책임 안물어
승자 정의만 존재 논란도
■ 도전받는 국제 전범재판 권위 지난 4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열린 믈라디치의 2차 공판은 그가 주도한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 16돌을 1주일 앞둔 시점이어서 의미가 더 부여됐다. 하지만 <시엔엔>(CNN) 방송 등이 중계한 공판에서 세계인들이 지켜본 것은 반성이나 단죄가 아니라 ‘원맨쇼’였다. 무슬림 남성 8000여명을 학살한 혐의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믈라디치는 공소 사실을 읽는 재판장에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머리가 시리니까 모자를 쓰게 해달라”며 떼를 쓰고 소란을 피웠다. 믈라디치는 계속 재판 절차에 따르지 않고 목청을 높이다 퇴정당했다.
캄보디아 특별법정도 유고전범재판소 못지않은 법정 모독을 당했다. 지난달 28일 이틀째 열린 공판에서 크메르루주의 2인자 누온 체아는 심리 도중 “불쾌하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외무장관 이엥 사리는 이날 공판에서 1996년 동료들을 이끌고 정부에 투항하면서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법정에 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고인들이 공공연히 법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 전범재판의 ‘관행’은 일국 차원의 재판들에 견주면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유고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가 2006년 옥사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연방 대통령도 법정의 적법성을 처음부터 부인했다.
■ ‘승자의 정의’·강대국 면책 이들의 재판 정당성 부정은 나름대로 논리적·정서적 기반 또는 핑계를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 논리는 ‘승자의 정의’다. 2차대전 뒤 열린 전범재판의 효시인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 때부터도 나온 말이다. 밀로셰비치는 역사적으로 세르비아 민족을 말살하려는 의도를 보여온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발칸전쟁 개입을 부추겼다며, 자신은 패장이라 재판을 받는다는 논리를 폈다. 그와 함께 인종청소를 지휘한 혐의로 법정에 선 믈라디치도 “장군으로서 내 나라와 국민들을 지키려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인종청소나 집단 성폭행 등 극악한 행위들이 처벌 대상이라는 점에서 억지스러운 주장이지만, 그들의 지지자들에게는 호소력을 발휘하는 발언이다.
이와 불가분하게 연결된 게 ‘강대국 면책’ 논리다. 특히 미국은 자국민이 소추될 것을 염려해 국제형사재판소 협약(로마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1998년 이 협약의 마련에 앞장섰다가 막판에 빠진 것이다. 미국은 테러 용의자를 국제 재판에 회부하자는 유럽의 요구도 거부하고 사법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용의자들을 구금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전범재판 회부권을 지닌 상황이라 미국인에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책임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
53개국이 가입한 아프리카연합이 지난 1일 국제형사재판소의 카다피 체포 노력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낸 것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아프리카연합은 공식적으로는 리비아 평화 협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장 핑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장은 “국제형사재판소는 아프리카인들을 재판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고 따졌다. 그는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국제형사재판소 수석검사를 향해 “정치를 중단하라”는 요구도 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 피해자들 불만도 비등 전범재판의 정치색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가해자 쪽만 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 쪽이나 국제적 정의 실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불충분한 처벌이 불만이다. 학살과 기아 등으로 최대 200만명이 희생된 킬링필드 사건을 다루는 캄보디아 특별법정에서는 지금까지 5명을 기소한 1·2호 사건 이상으로 수사와 재판이 확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희생자 수와 학살 범죄의 잔학성을 떠올리면 5명만 처벌하고 끝내는 것은 비례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크메르루주의 1인자 폴 포트가 법정에 한번 서지도 않은 채 1998년 숨졌기 때문에 희생자들 쪽이 느끼는 허탈감은 더하다.
비용과 노력에 견줘 재판 진행이 답답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정마다 연간 수천만달러에서 수억달러가 들어가지만, 법정을 세우기로 한 유엔 안보리 결의로부터 15년 이상씩 세월이 흘러도 재판의 끝이 안 보인다. 세르비아계 민병대에게 아들을 잃은 스레브레니차 주민 파딜라 에펜디치는 믈라디치의 법정 소란을 텔레비전으로 본 뒤 <에이피>(AP) 통신에 “재판이 빨리 끝나야 한다. 그가 우리 아이들을 다룬 대로 그도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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