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동남아와 동북아 양쪽에서
미국의 중국포위망이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중국포위망이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베트남 동남쪽에 ‘냐짱’이란 항구가 있다. 호찌민에서 450㎞ 떨어진 이곳은 ‘베트남의 보석’으로 불릴 만큼 풍광이 수려하다. 연평균 기온이 26도이고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은빛 모래밭과 투명한 바다, 싱그러운 야자수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10여년 전부터 해변 곳곳에 현대식 리조트가 속속 들어서더니 지금은 국제적인 휴양지가 됐다.
냐짱은 우리에게 익숙한 또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야전사령부와 십자성부대가 주둔했던 ‘나트랑’이 바로 냐짱의 영어식 표현이다. 미국의 해군기지가 있던 깜라인만(캄란만)과 함께 이 일대가 남중국해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증언한다. 깜라인만 해군기지는 미국이 철수한 이후 2002년까지 러시아의 동남아시아 거점으로 활용됐다.
그런 냐짱에 이번엔 인도군이 진주할 모양이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인도 해군에 냐짱 영구주둔을 제안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의 분쟁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를 끌어들이려는 책략으로 보인다. 중국의 굴기를 탐탁잖게 여기는 인도도 베트남의 이런 제안에 호의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천혜의 휴양지가 또다시 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은 앞서 깜라인만 해군기지도 미국과 러시아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군사적 대치는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그레이트 게임’을 함축한다. 인도양에선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거점을 잇는 중국의 ‘진주목걸이’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은 인도양 한복판의 디에고가르시아를 중심으로 믈라카(말라카)해협을 따라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다. 태평양에선 한국과 일본, 대만을 묶는 미국의 ‘대륙포위망’이 구축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해군력을 강화하며 포위망의 틈새를 노리고 있다. 냐짱은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의 이런 전략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쪽의 전선을 이어붙이면 가운데 접합점에 해당한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게임판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는 남중국해~대만해협~센카쿠열도~서해로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치선 위에 떠 있다. 태평양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국의 포위전략과 중국의 탈출전략이 이 선을 따라 부딪친다. 제주도의 이런 전략적 입지는 이미 패권국가에 의해 악용된 바 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은 1930년대 본격적인 중국 공략에 나서면서 모슬포에 공군기지를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전투기를 띄우면 중간에 급유를 하지 않아도 중국의 상하이나 난징을 타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주도는 중국의 이른바 ‘핵심이익’과 근접해 있다. 핵심이익이란 티베트나 신장처럼 중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목표를 가리킨다. 남중국해와 센카쿠열도, 서해로 이어지는 해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연평도 피격 이후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서해로 진입하려 하자 중국이 발끈한 것도 이 지역을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해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분쟁의 바다로 바뀔 수 있음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미국은 최근 아시아로의 복귀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대만에 대규모 무기 판매를 결정했고, 베트남과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한국과는 올해 들어 서해에서 대규모 합동훈련을 수차례 실시했다. 동남아와 동북아 양쪽에서 미국의 중국포위망이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제주도 해군기지는 운명적으로 이런 갈등의 파도를 탈 수밖에 없다. 제주도가 냐짱과 달리 휴양지로만 남을 수 있을까.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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