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민주화 철녀’ 이름으로…‘아랍의 봄’에 헌사
언론인 타와쿨 카르만, 표현자유·민주화 운동 주도
독재 맞선 공로 인정…사실상 중동 민주화에 시상 예멘 사람들은 그를 ‘철의 여인’ ‘혁명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극도로 보수적인 나라 예멘에서 32살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세 아이의 엄마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타와쿨 카르만은 이웃 나라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민주화 투쟁의 ‘불씨’를 키워온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2005년 비정부기구(NGO)인 ‘자유 여성 언론인’(Women Journalist Without Chain)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 등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활동에 투신했고, 예멘 야당인 ‘이슬라’의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의 권리 확대에 앞장섰다. 2007년 5월부터는 수도 사나에 있는 ‘자유의 광장’(지금은 ‘변화의 광장’)에서 비폭력적인 민주화 시위를 주도해왔다. 올해 초 예멘에서도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의 33년간 독재를 끝내자는 국민들의 여망이 터져나왔을 때 ‘준비된’ 그는 불씨를 거대한 ‘불길’로 키워냈다. 예멘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앞장선 그를 체포했을 때, 히잡을 쓰고 숨죽이고 있던 여성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살레 정권은 고작 몇 시간 만에 그를 풀어줘야 했고, 혁명을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그는 사나 등 주요 도시에서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의 선봉에 서서 수십만 시위대를 이끌고 있다. 거의 매일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는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도 그와 젊은 활동가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고집하고 있다.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그의 이런 공로를 인정해 7일 노벨 평화상을 안겼다. “(중동지역 곳곳에서) 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카르만은 세상에서 가장 독재적인 정권과 독재자 중 하나에 맞서 일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르만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평화상의 영광을 사실상 ‘아랍의 봄’ 전체에 돌린 것이나 다름없다.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리비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O) 군의 개입 아래 사실상 내전에 휩쓸렸고, 이집트와 튀니지도 혼란은 여전하다. 또 예멘과 시리아의 독재자들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고, 바레인 민주화 시위대는 사우디 정부군에게 짓밟히고 있다. 중동 민주화 운동의 불확실한 미래 속에, ‘아랍의 봄’ 전체에 평화상을 안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고 <에이피>(AP) 통신은 보도했다. 카르만은 이날 노벨 평화상 발표 직후 <에이피>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매우매우 행복하다”며 “이 상을 예멘 혁명에 동참한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돌린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라이베리아에 ‘평화의 깃발’ 꽂은 두 어머니 존슨 설리프 대통령, 두 차례 내전 수습·여권 강화
시민운동가 레이마 그보위, 반내전 여성단결 주도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운데 2명은 라이베리아의 오랜 내전을 끝내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온 두 여성이다. 먼저 엘런 존슨 설리프(73)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두차례에 걸친 라이베리아의 내전을 수습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온 공이 인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라이베리아에 평화를 확고히 하고 경제·사회적인 발전을 증진했으며 여성의 지위를 강화했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등에서 공부한 존슨 설리프는 1979년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 시절 재정장관으로 일하다가 1980년 새뮤얼 도의 쿠데타로 물러났다. 그 뒤 2차례 감옥에 갇혔다가 망명해 세계은행과 유엔개발계획에서 일했다. 두차례에 걸친 내전이 끝난 뒤인 2005년 아프리카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 하나뿐인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남편과 사별했으며 네 아들을 두고 있다. 존슨 설리프는 다음주 대통령 재선에 도전할 예정인데, 이번 수상으로 대선에서 날개를 달게 됐다. 노벨상위원회는 이번 선정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적들은 그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표를 사들이고 정부 자금을 이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존슨 설리프와 함께 수상하는 레이마 로베르타 그보위(39)는 라이베리아 내전을 끝낸 여성들의 평화운동을 이끌었다는 점을 평가받았다. 내전 기간 그는 종교와 종족을 넘어 라이베리아 여성들을 내전 반대 운동으로 단결시켰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존슨 설리프가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89~2003년 라이베리아의 1~2차 내전에서 상담사로 활약하면서 트라우마(외상 뒤 심리 장애)를 겪는 어린 병사들을 도왔다. 특히 여성들에게 내전에 참가한 남편과의 섹스를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섹스 파업’은 전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보위는 전쟁을 겪으며 “사회의 변화는 어머니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섯아이의 어머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독재 맞선 공로 인정…사실상 중동 민주화에 시상 예멘 사람들은 그를 ‘철의 여인’ ‘혁명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극도로 보수적인 나라 예멘에서 32살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세 아이의 엄마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타와쿨 카르만은 이웃 나라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민주화 투쟁의 ‘불씨’를 키워온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2005년 비정부기구(NGO)인 ‘자유 여성 언론인’(Women Journalist Without Chain)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 등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활동에 투신했고, 예멘 야당인 ‘이슬라’의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의 권리 확대에 앞장섰다. 2007년 5월부터는 수도 사나에 있는 ‘자유의 광장’(지금은 ‘변화의 광장’)에서 비폭력적인 민주화 시위를 주도해왔다. 올해 초 예멘에서도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의 33년간 독재를 끝내자는 국민들의 여망이 터져나왔을 때 ‘준비된’ 그는 불씨를 거대한 ‘불길’로 키워냈다. 예멘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앞장선 그를 체포했을 때, 히잡을 쓰고 숨죽이고 있던 여성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살레 정권은 고작 몇 시간 만에 그를 풀어줘야 했고, 혁명을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그는 사나 등 주요 도시에서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의 선봉에 서서 수십만 시위대를 이끌고 있다. 거의 매일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는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도 그와 젊은 활동가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고집하고 있다.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그의 이런 공로를 인정해 7일 노벨 평화상을 안겼다. “(중동지역 곳곳에서) 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카르만은 세상에서 가장 독재적인 정권과 독재자 중 하나에 맞서 일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르만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평화상의 영광을 사실상 ‘아랍의 봄’ 전체에 돌린 것이나 다름없다.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리비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O) 군의 개입 아래 사실상 내전에 휩쓸렸고, 이집트와 튀니지도 혼란은 여전하다. 또 예멘과 시리아의 독재자들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고, 바레인 민주화 시위대는 사우디 정부군에게 짓밟히고 있다. 중동 민주화 운동의 불확실한 미래 속에, ‘아랍의 봄’ 전체에 평화상을 안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고 <에이피>(AP) 통신은 보도했다. 카르만은 이날 노벨 평화상 발표 직후 <에이피>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매우매우 행복하다”며 “이 상을 예멘 혁명에 동참한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돌린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라이베리아에 ‘평화의 깃발’ 꽂은 두 어머니 존슨 설리프 대통령, 두 차례 내전 수습·여권 강화
시민운동가 레이마 그보위, 반내전 여성단결 주도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운데 2명은 라이베리아의 오랜 내전을 끝내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온 두 여성이다. 먼저 엘런 존슨 설리프(73)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두차례에 걸친 라이베리아의 내전을 수습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온 공이 인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라이베리아에 평화를 확고히 하고 경제·사회적인 발전을 증진했으며 여성의 지위를 강화했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등에서 공부한 존슨 설리프는 1979년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 시절 재정장관으로 일하다가 1980년 새뮤얼 도의 쿠데타로 물러났다. 그 뒤 2차례 감옥에 갇혔다가 망명해 세계은행과 유엔개발계획에서 일했다. 두차례에 걸친 내전이 끝난 뒤인 2005년 아프리카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 하나뿐인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남편과 사별했으며 네 아들을 두고 있다. 존슨 설리프는 다음주 대통령 재선에 도전할 예정인데, 이번 수상으로 대선에서 날개를 달게 됐다. 노벨상위원회는 이번 선정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적들은 그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표를 사들이고 정부 자금을 이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존슨 설리프와 함께 수상하는 레이마 로베르타 그보위(39)는 라이베리아 내전을 끝낸 여성들의 평화운동을 이끌었다는 점을 평가받았다. 내전 기간 그는 종교와 종족을 넘어 라이베리아 여성들을 내전 반대 운동으로 단결시켰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존슨 설리프가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89~2003년 라이베리아의 1~2차 내전에서 상담사로 활약하면서 트라우마(외상 뒤 심리 장애)를 겪는 어린 병사들을 도왔다. 특히 여성들에게 내전에 참가한 남편과의 섹스를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섹스 파업’은 전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보위는 전쟁을 겪으며 “사회의 변화는 어머니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섯아이의 어머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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