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순간 무책임’ 블랙박스 공개
좌초 크루즈선장 ‘직무유기’ 확인
좌초 크루즈선장 ‘직무유기’ 확인
항만 관리: “지금 배로 가서 비상 사다리로 올라가 대피를 지휘하시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아이들, 여성들, 탑승객들이 거기 있는지, 항목별로 정확한 숫자를 우리에게 말해야 하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요? 당신, 구조를 포기하는 거요? 선장, 이건 명령이오, 나는 지금 유일한 책임자요. 당신은 배를 버릴 거라고 공표한 거요. 벌써 주검들이 나왔소.”
선장: “얼마나 많은데요?”
항만 관리: “그건 당신이 나한테 말해야지,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요? 집에 가고 싶다는 거요?”
지난 13일 이탈리아 질리오섬 연안에서 좌초해 11명이 숨지고 24명이 실종된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사고 당시,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과 항만 관리의 통화 내용이 담긴 블랙박스 내용이 16일 일부 공개됐다. 사고 직후부터 선장이 무책임하게 도피했다는 증언이 이어졌지만,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한 실제 통화 내용은 4200여명의 목숨을 책임진 ‘캡틴’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스케티노 선장이 ‘진두지휘’ 책임을 회피하는 와중에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와 같은 ‘신사도’ 역시 실종됐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16일 “일부 남성 승객들이 여성과 어린이가 구명보트를 탈 때까지 기다린다는 암묵적인 권고사항을 따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사실 국제해사법에 따르면 어떤 승객부터 탈출시킬지 판단하는 것은 선장의 몫이지, 의무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1852년 영국 군함 버컨헤드호 침몰 사건 이후 구명보트 승선에 여성과 어린이를 앞세우는 것은 불문율처럼 돼 있다. 당시 배에는 500명의 군인과 여성 및 어린이 26명이 타고 있었는데, 여성과 어린이들은 모두 구조된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숨졌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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