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정권 학살 수사 명령했다 직권남용 기소당해
대법원, 공소기각신청 거부…지지자들 “괘씸죄 찍혀”
대법원, 공소기각신청 거부…지지자들 “괘씸죄 찍혀”
스페인 대법원은 31일 프랑코 독재시대의 반인도주의 범죄를 단죄하려다 극우단체의 고발로 법정에 서게 된 ‘인권 판사’ 발타사르 가르손(57)의 공소기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독일 <데페아>(dpa) 통신은 이날 7명의 스페인 대법관들이 “극우단체의 우려는 집단적 이익에 관한 것”이라며 “(가르손에 대한) 공소기각을 정당화할 만큼의 충분한 자료가 없다”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스페인 검찰과 가르손의 변호인은 극우단체 쪽의 소 제기를 받아준 판사가 해당 단체의 소송을 도왔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다며 그동안 공소기각을 요구해왔다.
2008년 10월 가르손 수사판사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과 뒤이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 때(~1975년) 살해된 11만4000명에 대한 수사 개시를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선구적인’ 결정에 대해 스페인 보수 정치세력은 즉각 “가르손은 나폴레옹도 법정에 세울 판사”라며 반발했고, 두 극우단체가 직권남용 혐의로 그를 고발했다. 가르손이 1977년 스페인이 민주화로 이행할 때 의회에서 통과된 ‘면책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가르손은 또 현 집권당인 국민당 부정부패 사건과 관련해 불법 도청을 지시했다는 혐의와 뉴욕대 안식년 기간에 산탄데르 은행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가르손과 관련자들 모두 분노하며 해당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가르손은 이날 법정에 나와 “면책법은 정치 범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며 “엄밀한 의미에서 반인도주의 범죄는 면책법을 참고할 필요가 없다”고 항변했다. 국제적인 인권단체와 지지자들도 가르손이 ‘괘씸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날 법정에 나온 가르손이 짧은 진술을 하는 동안 밖에서는 100여명의 시위대가 ‘정의’라고 쓰인 펼침막과 프랑코 독재 희생자들의 흑백사진을 흔들며 그를 지지했다. 시위자 피오 마세다는 “우리는 프랑코 시대의 범죄를 심판하려고 노력했던 판사가 그 법정에 가장 먼저 앉아 심판을 받게 된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대법원의 결정을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그의 ‘명성’을 시샘하는 동료 판사들의 음모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가르손은 1998년 “반인도주의 범죄는 모든 국가가 관할권을 갖고 있다”며 칠레인 3000여명을 죽인 피노체트를 스페인으로 송환할 수 있게 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가르손과 가까운 한 검사는 “가르손이 아닌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판사들은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그를 법원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가르손은 2010년 5월 법관 직무를 정지당했으며, 현재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재판을 계속 받게 된 가르손은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대 20년간 판사자격이 정지당할 수도 있어 사실상 그의 판사 생명은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논쟁은 ‘스페인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기억되며, 이 나라에 길고도 깊은 상처로 남을 전망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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