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행진 앞에 ‘종이 시대’의 거인이 또 하나 쓰러졌다.
<에이피>(AP) 통신은 영미권에서 백과사전의 대명사 지위를 누려온 브리태니커의 발행 중단이 공식 발표됐다고 14일 보도했다. 브리태니커는 32권짜리를 출간한 2010년 이후 신판을 내지 않았는데 이제 책자로는 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브리태니커사의 조지 카우즈 사장은 오프라인 발행 중단 선언을 “통과의례”로 부르면서 “슬픔과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우즈는 그러나 웹사이트는 계속 업데이트된다며, 브리태니커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인터넷 속으로 들어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서비스는 훨씬 방대하며 멀티미디어 기능도 갖춰” 오프라인 출간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68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출간되기 시작한 브리태니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백과사전이었다. 세계적으로 전문가 수천명이 집필에 참여해온 이 백과사전은 당대 지식의 총결집체 역할을 해왔다. 도서관과 학교는 빠짐없이 브리태니커를 구비해야 했고, 부와 함께 교양도 갖췄다고 은근히 내세우고 싶었던 미국 가정들도 브리태니커를 책장에 꽂았다.
다른 많은 세상사처럼 브리태니커도 절정기에 곧장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속도도 빨랐다. 1990년에 미국에서 12만질이 팔리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불과 6년 만에 판매고는 4만질로 떨어졌다. 지금 브리태니커사 매출에서 오프라인 백과사전의 비중은 1%밖에 안된다. 대신 이 회사는 교재 판매와 온라인 백과사전 이용료로 운영되고 있다.
브리태니커의 ‘주적’은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편집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다. 브리태니커는 아마 이렇게 빨리 작별을 고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부정확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온라인 백과사전이 브리태니커의 상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고집해왔다.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의 자리를 빠르게 잠식했다. 2005년에는 브리태니커와 위키피디아의 오류 수준이 별 차이가 없다는 ‘당혹스런’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카우즈는 “오프라인 출간 중단은 위키피디아나 구글하고는 관련이 없다”며, 외부의 경쟁자보다 디지털시대의 도래 자체가 전략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브리태니커는 1989년에 처음으로 시디롬을 제작했고 94년에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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