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서 레바논 동쪽 베카벨리로 피난온 여섯살 할리메(가명)이 부모님이 직접 만든 움막집 앞에 서 있다. 할리메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4명과 함께 석달 전 이곳에 왔다.
[2012 희망나눔 레바논으로 피난온 시리아인들]
전쟁과 가난 속에서 꽃같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사라진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명의 아이와 여성 등 취약계층이 공포와 굶주림, 추위로 고통을 받으며 좀더 나은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한겨레>는 올해 연중기획으로 진행중인 ‘나눔 캠페인’의 하나로, 어린이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려 만들어진 모금·배분 전문기관 ‘바보의 나눔’과 함께 네 차례에 걸쳐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어린이와 여성을 찾아간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작은 관심이다.
13일 레바논 동쪽 베카 계곡 산자락에 자리잡은 소도시 자흘레는 곧 눈이 내릴 듯 잔뜩 흐렸다. 물기를 머금은 추위가 스며들어 겨울 점퍼를 여몄다. 수은주가 영하로 치닫던 이날, 여섯살 할리메(가명)는 집안에 흥건히 고인 빗물을 빗자루로 밀어내고 있었다. 맨발에 신은 슬리퍼 사이로 비쭉 나온 발가락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할리메 뒤에 숨은 동생들은 커다란 먹빛 눈망울로 낯선 손님들을 빤히 쳐다봤다.
자흘레에서 자동차로 8시간 걸리는 시리아 중부 에브랩에서 살던 할리메 가족 8명은 석달 전 폭격을 피해 국경을 탈출했다. 친척집에서 며칠 신세를 진 뒤, 자흘레 외곽에 움막집을 지었다. 한달에 18만 레바논파운드(12만8000원)를 내는 조건으로 빌린 땅에 타이어, 골판지, 나무 막대기로 얼기설기 방 2개를 만들었다.
폭격 피해 국경탈출한 한 가족
영하의 추위에 아이들은 맨발
“시리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연간 1인당 평균소득이 2800달러(300만원)인 시리아에서 농사일을 하던 할리메 부모님에게 임대료는 버거운 액수다.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온 이들은 비싼 임대료에 아이 여섯명을 키우느라 벌써 50만파운드(36만원)를 빚졌다. 레바논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일부 도입된 시리아보다 생필품 가격이 훨씬 비싸다. 난방에 필요한 석유가 1ℓ에 2000파운드(1427원)나 한다. 어른들의 전쟁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만드는 것일까? 할리메는 어리지만 레바논으로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전쟁이 났어요. 전 아사드 대통령이 무서워요.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총 쏘라고 한 거잖아요.” 레바논에 와선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할리메는 온종일 심심하다. 집 옆에 놓인 플라스틱 상자를 쌓는 집짓기 놀이가 고작이다. 아니면 집에 하나뿐인 난롯가에 앉아 이웃집에서 받은 손바닥만한 텔레비전을 본다. “텔레비전이 너무 작아요. 춥고요. 시리아 집에선 하루 종일 난로를 켰는데.” 할리메의 소원은 하루빨리 시리아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뛰어노는 거다. 할리메의 오두막집엔 비닐로 된 가림막이라도 달려 있지만, 부슈라(가명·29), 가디르(가명·23) 자매는 2주째 문도 창문도, 전깃불도 없는 집에서 살고 있다. 시리아 반정부군의 거점인 홈스 출신인 이들은 가까운 레바논 국경이 봉쇄된 탓에 하마, 다마스쿠스를 거쳐 간신히 레바논 북쪽 접경마을 마샤에 도착했다. 두 자매의 남편, 아이들 모두 10명이 이곳에 오기까지 ‘검문소 비공식 통행료’와 차량 대여비 등 400달러가 들었다. 12시간 동안 가슴 졸이며 차를 타고 온 탓에 임신 6개월째인 가디르는 오자마자 크게 앓았다. 자매들은 “밤늦게 마을에 도착했는데 운 좋게도 집주인을 만나서 잠잘 곳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지붕 있는 거처를 구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 집은 ‘지어지는 중’이었다. 12일 집을 둘러보니, 차마 방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방은 전날 비가 들이쳐 물바다를 이뤘다. 이런 집도 월세가 400달러다. 임시방편으로 가게에서 식료품을 외상으로 사고 있지만 이 생활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아무도 모른다. 움막집은 형편 그나마 나은편
창문·지붕없는 집도 월세 내야
난민들 몰리자 임대료 2~3배로 마샤에서 언덕 하나, 강 하나 건너면 되는 시리아의 칼라크 마을에서 피난 온 네자에(가명·36)는 6개월 된 젖먹이를 포함해 여섯 아이의 엄마다. 그는 고향마을 쪽에서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 여동생네가 걱정스럽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큰딸 조아헬(가명·13)도 신경이 쓰인다. 조아헬은 모든 수업이 아랍어로 이뤄지는 시리아와 달리 일부 과목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가르치는 레바논 학교를 싫어한다. 학교 사정도 시리아보다 열악하다. 시리아 아이들은 레바논에선 ‘너무 추워서’ 교실에 앉아 있기 힘들다고 호소할 정도다. 네자에는 “레바논으로 탈출할 때 이미 집은 절반 이상이 파손된 상태였다. 그래도 너무 집이 그립다. 고향에 돌아가자마자 땅에 입맞춤을 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3월 벌어진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불붙은 이래 지금까지 레바논으로 몰려든 난민 수는 20만여명에 이른다. 지금까지 4만여명이 희생된 참혹한 전쟁을 피해, 시리아 사람들은 국경 통과가 자유로운 레바논으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시리아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립적 자세를 유지해온 레바논 정부는 요르단·터키와 달리 집단 난민촌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지휘 하에 국제구호단체들이 생계·주거·건강·위생·교육 등 긴급구호에 나서고 있지만, 피난민들의 자력갱생이 기본이다. 친척·지인의 도움이 없는 한 할리메 가족처럼 땅을 빌려 집을 짓거나 주차장·지하층·공사가 덜 끝난 집 같은 곳을 빌려 살아야 한다. 난민들이 쏟아지는 통에 레바논 접경지역의 집·땅 임대료는 2~3배 뛰었다. 아동인권옹호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의 피난민 담당자인 데이비드 사커는 “집주인들은 난민들이 집세를 내지 못하면 바로 내쫓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서 살던 가족이 시간이 지나면 주차장이나 공사가 덜 끝난 집으로, 그다음엔 할리메 가족처럼 움막집으로 밀려난다”고 말했다. 자흘레·마샤(레바논)/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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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지붕없는 집도 월세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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