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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나 블랙리스트다, 비자 달라”

등록 2013-01-18 20:45수정 2013-01-18 21:30

[토요판] 커버스토리
동행 취재 뒷이야기
버마학생민주전선 대표단이 현실점검여행이라는 이름을 걸고 조국인 버마 땅을 밟는 데 24년이 걸렸다면, 나도 그에 만만찮은 16년이 걸렸다.

나는 1995년과 1996년 두 차례 아웅산 수치(수찌) 인터뷰를 끝으로 랑군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신세였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광비자라도 얻어 보겠다고 줄기차게 매달렸지만 모조리 거부당했다. 2007년 승려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는 말할 나위도 없었고, 2008년 버마를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1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2011년부터 버마에 ‘변화’란 바람이 불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외신기자들마저 랑군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지난해 4월에는 아웅산 수치가 보궐선거 후보로 참여하면서 공식적으로 외신 취재를 허락했다. 그러나 내 여권은 여전히 비자 없이 되돌아 나왔다.

지난해 8월30일 버마 정부는 버마인 935명과 외국인 1147명을 포함한 2082명을 ‘입국 블랙리스트’에서 해제했다. 눈 닦고 찾아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사실은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지 어떤지도 알 길이 없다. 아직까지 버마 정부가 해제하지 않은 4083명 이름이 다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첫 밀담을 나눌 때부터 단독으로 취재해 오면서 학생대표단의 현실점검여행까지 동행취재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비자가 문제였다. 담판이 필요한데 맞붙어 볼 데도 마땅찮았다. 버마대사관에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9일 평화협상을 주도해온 아웅 민 대통령실 장관이 버마학생민주전선과 회담차 타이의 치앙마이로 온다는 정보를 잡았다. 정부는 ‘노 미디어, 노 뉴스’를 내세워 회담 당일 아침까지 장소와 시간을 내놓지 않을 만큼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오후 3시 무렵 아웅 민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회담장으로 달려갔다. 출입이 통제된 밀담장 안으로 아웅 민에게 “인터뷰하자”는 쪽지를 보냈다. “싫다”는 답이 왔다. 다시 “인사라도 하자”는 쪽지를 보냈다. “좋다”는 답이 왔다. 정부 대표단 안내를 받아 회담장으로 들어가 인사를 나눴다. 그는 친절했지만 인터뷰는 사양했다. 회담에 이은 만찬이 끝나갈 무렵 다짜고짜 밀고 들어가 사진을 찍었더니 아웅 민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아웅 민은 다시 인터뷰를 요청한 내게 “네피도로 오라”며 흔쾌히 받았다.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블랙리스트다. 비자 달라.” 아웅 민은 “문제없다”며 측근을 불러 “비자 줘라. 명령이다”라고 지시했다.

술기운이 아니었기만을 고대했고, 방콕 주재 버마대사관에서 비자를 붙인 여권이 돌아 나올 때까지는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마침내 랑군에 들어갔다. 16년 만이었다. 아무런 집적거림 없이 자유롭게 버마학생민주전선 대표단 동행취재를 했다. 여전히 정부의 개혁 방향이 불투명하고 군부의 심사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적어도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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