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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참을수 없이 슬픈 건, 전쟁의 고통이 잊혀진 것입니다

등록 2013-05-15 20:34수정 2013-05-16 14:03

[창간 25돌] 전쟁과 평화 (하)
‘베트남전쟁 참전 작가’ 바오닌이 보내온 편지
베트남전 남군-북군이었던
두 늙은이가 만났습니다
이제야 서로 미워하지 않음을
깨달은 우린 모두 패자였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승자였습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을 증오하지만
20세기 피로 쓴 역사의 교훈은
21세기 들어 잊혀졌습니다
죄악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K에게

어제 오후에는 일본에 살고 있는 내 친구 뜨엉이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2002년 나와 함께 도쿄에서 그를 만났는데 기억하는지요? 그는 지금도 당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젊고, 아름답고, 특히 베트남어 실력이 아주 뛰어난, 그리고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었던 한국 여성으로 말이지요.

아마도 도쿄에서의 만남과 K 당신을 떠올린 탓이겠지만, 어제 뜨엉과 나는 최근 한반도와 동해의 정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걱정이 많더군요. 그건 막연한 우려가 아닌 실질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38선에서 꽤 가까운 고베에 살고 있는 그는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옛날 17도선이 떠올라 화들짝 놀라곤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과 북한의 얘기로 시작해서 우리는 그렇게 베트남 전쟁이라는 과거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K도 알고 있듯이 나는 북베트남군의 병사였습니다. 그리고 뜨엉은 남베트남군의 병사였지요.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둘로 나뉘었습니다. 북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를, 남베트남은 자본주의 체제를 따르게 되었는데, 북한-남한 그리고 동독-서독과도 아주 비슷했지요. 뜨엉은 베트남공화국의 수도인 사이공에 살았고, 나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하노이에 살았습니다. 1954년 당시에 우리는 그저 두 명의 어린아이에 불과했죠. 나는 두 살, 뜨엉은 네 살이었어요. 아마도 나는 아직 말도 못했을 테고 뜨엉은 걸음조차 서툰 아이였을 텐데, 우리는 서로 적대적인 두 정치체제에 속해 있었던 거지요!

북위 17도선, “평화의 칼”이 베트남을 둘로 갈랐습니다. 평화, 그러나 남과 북은 통상적으로 왕래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두 지역 모두 소리 높여 조국 통일을 외쳤지만 서로를 외면하고 적대행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7도선이 그어져 만들어진 평화는 겨우 10년간 유지되었습니다. 1965년이 되자 대규모의 전쟁이 발발했지요. 평화의 위도는 “죽음의 신”의 좌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1968년 뜨엉은 사이공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를 합니다. 그는 남베트남 제23보병사단의 병사가 되어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우게 되지요. 그리고 나는 1969년에 하노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북베트남 제10보병사단의 병사가 되어 역시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웠지요. 내 무기는 소련이 지원한 AK47 소총이었고 뜨엉의 것은 미국이 지원한 M16 소총이었지요. 뜨엉의 23사단과 나의 10사단은 수년에 걸쳐 격렬한 교전을 주고받았고, 서로 수만 명의 전우를 잃어야 했습니다.

1975년 4월30일, 베트남 전쟁이 끝났습니다. 나는 승전병이었으나 나와 같은 도시에서 자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입대까지 함께했던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은 1969년에 모두 전사하고 나만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제대를 하고, 하노이에 돌아왔고, 대학을 다녔고, 작가가 되었으며, 그리고 늙어갔지요. 나와 함께했던 10사단의 친구들은 대부분 홍강 델타의 농촌으로 돌아갔고, 농민의 삶을 살았고, 역시 그렇게 늙어갔지요.

그리고 뜨엉은 패잔병이었습니다. 그는 7년간 재교육 수용소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1982년, 감옥에서 나와 보트피플이 되어 고베에 정착했지요.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전기기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처럼 소설을 쓰지는 않았지만 많은 시를 지었지요. 그리고 그도 그렇게 늙어갔습니다.

이제 나와 뜨엉, 61살과 63살의 백발의 두 노인네가 방에 앉아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창밖은 하노이의 봄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공감하며 허물없이 지낼 뿐만 아니라 말할 것도 없이 만나면 즐겁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기도 합니다. K도 알겠지만, 이건 정말로 너무나도 부조리한 일입니다. 어째서 우리는 젊은 시절부터 이렇게 마주 앉을 수 없었던 걸까요? 어째서 서로를 총으로 쏴 죽이고, 그토록 잔인하게 학대하고, 우리 조국의 남부와 북부를 폐허로 만들고, 피가 흘러 강을 이루게 하고, 이제 이렇게 늙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 전혀 미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가요? 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뜨엉은 패했지만, 정말로 그러한가요? 아니면 우리 베트남 사람 모두가 패배자이고, 베트남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중국과 미국이 아니었을까요?

정치가와 역사학자들은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침략전쟁과 방어전쟁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K,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것이 고귀한 것이든 추악한 것이든 간에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증오해야 할 것은 내전입니다. 나는 내전이야말로 식인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베트남 전쟁이 인류에게 조금은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참혹한 교훈은 아마도 독일 사람들이 1989년 평화로운 방법으로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베트남의 교훈은 남아프리카 사람들이 1994년 넬슨 만델라의 평화의 깃발 아래 무기를 내려놓고 통일을 하는 데도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을 수 없이 슬픈 것은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의 교훈, 그리고 20세기의 사람들이 피로 쓴 역사의 교훈들이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잊혀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경험, 나와 뜨엉 세대의 삶 속에 축적되어 있던 지혜와 경륜은1999년 12월31일 전세계가 밤하늘에 눈부시게 쏘아 올린 불꽃과 함께 부서져 내렸습니다. 인류의 젊은 세대는 숫자 0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충분히 불운했던 20세기에 우리 세대가 저지른 모든 죄악들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젊은 K, 한국인으로서 당신은 나의 이런 생각이 맞다고 보는가요? 아니면, 나는 그저 비관적인 한 노인네에 불과한 것인가요?

언제든 사이공에서 하노이로 오게 되면 나를 찾아주시길요. 우리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나의 친애하는 벗에게

2013년 4월20일, 하노이에서 바오닌.

바오닌은 누구
1952년생. 베트남의 소설가. 17살 때인 1969년 고등학교 졸업 뒤 베트남 전쟁에 베트남인민군으로 자원입대. 첫 전투에서 배속된 소대의 대원들이 대부분 전사해 참전 5개월 만에 하사로 진급했으며 그 뒤 6년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대 지휘관으로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여. 전쟁이 끝난 뒤에는 문학학교에서 수학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휴머니즘 시각에서 조명한 첫 장편 <전쟁의 슬픔>을 펴내 베트남작가협회 최고작품상을 받고 2012년 현재 한국 등 1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될 만큼 베트남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이다.

한반도 평화 기원 메시지
아랫글은 한반도에 전운이 짙게 드리웠던 지난달 한국작가회의에 보낸 평화 기원 메시지 전문이다.

모든 전쟁에서 민간인들만이 패배자일 뿐입니다. 모든 내전에서 외세만이 그 이익의 향유자일 뿐입니다. 20세기에 외국의 권력자들은 베트남전쟁을 일으켜 베트남 민족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여서라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어서라도 그들의 이익에 복무토록 했습니다. 이제, 21세기에, 그 외국의 권력자들은 또다시 그들의 “전승”을 위해 한국과 북한을 동족 살육의 전장으로 몰아넣으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의 두 형제들은 결코 새로운 참극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엄중한 전쟁 위기에 처해 있는 곳 중 하나인 한반도는 21세기에 가장 빛나는 평화와 우애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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