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불편한 나라 징검다리 삼아
줄리언 어산지 망명한 나라로
미, 간첩죄 등 기소·여권 무효화
중·러·위키리크스 협력에 무력
에콰도르, ‘반미좌파 구심’ 부상
‘언론자유보호국’ 포장 활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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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보호국’ 포장 활용할듯
‘빅 브러더’ 미국의 민낯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29)이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도움으로 에콰도르 등 몇 개국에 망명을 신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자랑하던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불편한 관계’를 맺어온 에콰도르·중국·러시아 등과 위키리크스의 협공에 허를 찔렸다.
베트남을 방문중인 리카르도 파티뇨 에콰도르 외교장관은 24일 스노든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파티뇨 장관은 “표현의 자유와 세계 시민들의 안보 차원에서 (망명 허용여부)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콰도르 일간지 <오이>(Hoy)는 러시아 주재 에콰도르 대사가 스노든과 면담했다고 보도했다.
스노든은 지난달 20일 부즈앨런해밀턴의 미 국가안보국(NSA) 파견 직원으로 근무하던 하와이를 떠나 홍콩에서 도피 여정을 시작했다. 위키리크스 쪽은 “스노든이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도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으나, <시엔엔>(CNN)방송은 아이슬란드 당국자가 이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현재로선 러시아와 쿠바를 거쳐 에콰도르에 정착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스노든은 23일 오전 10시55분께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을 떠나 오후 5시5분께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곤 베네수엘라 또는 에콰도르 대사관 소속 외교관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스노든은 이후 24일 오후 출발하는 쿠바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으나, 탑승은 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쿠바로 떠난 것인지, 모스크바에 있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망명을 허용해 ‘미국 내부고발자의 은신처’를 자처한 에콰도르는 이번에도 스노든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미국과 에콰도르가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었으나, 정치적인 인물의 범죄나 위법 행위는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미국이 에콰도르산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 혜택 연장 여부를 곧 결정할 예정이어서, 에콰도르 정부가 부담을 느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스노든은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에게 정치적 ‘명분’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다. <로이터> 통신은 24일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망 이후 남미의 ‘반미 좌파 구심점’이 사라진 가운데, 코레아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자신의 ‘상징성’을 부각시킬 기회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에콰도르 정부는 최근 언론탄압 미디어법의 국회 통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는데, 스노든의 망명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선전할 호재이기도 하다.
특급 국가기밀 유출자의 신병확보에 실패하고 적대적인 관계인 에콰도르에 꽃놀이패를 쥐여준 꼴이 된 미국은 ‘스노든 탈출’에 관련된 국가들에 날을 세웠다. 미국은 지난 14일 비밀리에 스노든을 간첩죄와 절도 및 정부 자산 무단 변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어 22일 홍콩과 러시아에 스노든의 미국 여권이 무효가 됐다고 통보하고도 스노든의 모스크바행을 막지 못했다. 미국 민주당의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홍콩이 한 일이 매우 실망스럽다. 베이징(중국 정부)의 손이 개입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개의 체제) 관계에 있는 홍콩특별자치정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홍콩은 “미국 정부가 임시 체포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증빙서류 미비로 인해 스노든이 홍콩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중국에선 관영 언론이 전면에 나서 최근 미국 정보당국이 칭화대와 이동통신사 등 중국의 민간부문을 도·감청 및 해킹했다는 스노든의 폭로의 여세를 몰아 미국을 공격했다.
스노든의 극적인 망명 과정에선 위키리크스의 주도적 구실이 특히 눈에 띈다. <워싱턴 포스트>는 스노든이 현재 위키리크스 법률팀의 세라 해리슨과 동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리슨은 영국 국적의 저널리스트이자 법률 전문가로, 칠레의 전 독재자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기소한 스페인 출신 인권 변호사 발타사르 가르손과 함께 일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성명을 통해 “스노든은 공익을 위해 위대한 임무를 수행했다”며 그를 돕는 이유를 밝혔다. 가르손도 “위키리크스 법률팀과 나는, 한 인간으로서 스노든의 권리와 그를 보호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중범죄 혐의로 수배중인 스노든에게 국가 간 이동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스노든의 경유지 국가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는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았고, 쿠바나 에콰도르와는 적대적인 관계다. 이 때문에 <비비시> 방송은 미국이 스노든의 신병을 넘겨받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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