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왼쪽)·최선미씨 부부가 9월20일 네팔 포카라에서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 겸 식당 ‘보물섬’에서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21세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⑥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⑥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9월19일 밤, 네팔 포카라에 한가위 보름달이 높이 떠올랐다. 조명이 밝지 않은 포카라의 밤거리가 달빛에 젖어들었다. 방희종(42)씨가 중얼거렸다. “달빛이 꼭 눈처럼 쌓였네.” 그날 밤 방씨의 민박집에 짐을 푼 손님 중 한 명이 먼 산을 가리켰다. “너무 밝아서 안나푸르나 산줄기까지 보이는 것 같아.” 신성한 산 안나푸르나가 한밤중에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낼 리 없었지만, 오곡이 익는 추석이니만큼 이날 밤은 왠지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우리에게 다가올 듯도 했다.
안나푸르나 자락 포카라의 두 부부
풍광·여유에 반해 아예 눌러앉았다
식당·카페 차리고 욕심 덜내며 사니
“1년내내 일만 하진 않을 자유 얻어” 툭하면 단전에 말 안통하는 직원들
보기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지만
“전화 안받아도 되는 삶이 좋다” 방씨와 아내 강부형(38)씨가 포카라에 터를 잡은 것은 5년 전. 문화센터 사진강좌에서 만난 이들은 2006년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여행으로 두달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들른 곳이 포카라다. 트레킹 여행객들이 북적이는 관광지이면서도 고요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구름 없는 날엔, 페와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 안나푸르나의 7000~8000m급 높은 봉우리가 드리웠다. 2008년 이들은 전세 보증금을 빼들고 포카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왕창 올린 것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새 삶을 찾아나선 결단이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한 남편은 한국을 떠나는 데 별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야근이 너무 싫었다”고 방씨는 실토한다. 남편을 만난 뒤 여행 맛을 알게 된 강씨도 초음파 진단사 일을 그만두고 떠났다. 친구들은 “가난한 나라에 가서 왜 힘들게 사냐”고 말렸다. 당시 네팔은 내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정치도 불안정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부부는 포카라와 운때가 맞았다. 도착한 지 두달 만에 우연히 식당 터를 빌리게 됐고, 다음달 바로 가게 문을 열었다. 식당 이름은 평소 부부가 즐겨 하던 ‘취미’인 ‘낮술’로 정했다. 실제로 ‘낮술’ 초창기엔 마음 맞는 배낭여행객들을 만나면 부부가 함께 낮술에 취하기도 했었다.
건축을 공부한 방씨가 손수 건물을 설계했고, 현지에서 조달한 건축 자재로 한옥 냄새 물씬 나는 별실도 지었다. 건물 네 기둥엔 이런 주련을 걸었다. “구름 걷히자 봉우리 우뚝하고(雲歸峰翠屹)/ 바위 사이로 물소리 허허롭네(石立水聲虛)/ 서로 어울려 소요하던 날(相與逍遙日)/ 맑은 인연이 넉넉하네(淸緣自有餘).”
음식 차림새나 건물 분위기가 정갈하고 짜임새가 있어, 한국 여행객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낮술을 많이 찾는다. 이들은 포카라에 온 첫해엔 가게 옆,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월세로 살다가 이듬해 큰 집으로 옮겼다. 그러다 “방이 남고 심심해서” 민박집을 시작했다. 객실은 두개. 전화나 이메일로 예약을 받는다. 민박이나 식당 모두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지만, 부부에겐 원칙이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 손님’까지 인내하진 않겠다는 거다. 남편은 “모든 사람에게 다 친절하게 사는 건 위험한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도 반문했다. “손님이 왕이라고 하는데, 왕이 너무 싫으면 반란 일으켜서 왕을 바꾸지 않나요?”
이들은 열심히 살지만, 그렇다고 ‘너무’ 열심히 살진 않는다. 민박 손님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나면,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커피를 거른다. 맑은 아침, 커피잔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저 멀리에서 높은 산봉우리들이 흰 이마를 드러내고 서 있다. 가까이는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있는 봉우리 사랑곳이 보인다. ‘바람이 좋은 날’이면 캐노피(패러글라이더의 날개 부분)들이 점점이 색종이처럼 떠다닌다. 포카라에선 사랑곳처럼 가까이 있어서 푸르게 보이는 산들은 그냥 힐(hill)이라 부른다. 멀리 있는 고봉들, 만년설로 뒤덮인 곳이야말로 진짜 산, 마운틴(mountain)이다. ‘마운틴’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에 따라 오늘 날씨가 어떤지를 가늠한다. 안나푸르나가 선사하는 여유를 즐긴 뒤엔 각자 일하러 나선다. 이들은 올 연말까지 식당 터를 옮겨 새로 문을 열 예정이다. 남편은 새 식당 건물 공사장으로 떠나고 아내는 집안을 정리하고 가게 일을 돌본다.
‘낮술 부부’의 민박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보물섬’이 나온다. 김대환(40)·최선미(31)씨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 겸 카페다. 한국에서 남편 김씨는 뮤지컬 감독이자 작곡가였고, 최씨는 뮤지컬 배우였다. 김씨가 연출한 뮤지컬에 출연하려고 최씨가 오디션을 보러 왔다가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두달 만에 결혼했다. 김씨가 지난해 영국에서 음악감독 제의를 받고 갔다가 조건이 안 맞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자, 이들은 “이왕 이렇게 됐으니 여행이나 하자”며 길을 나섰다. 유럽 여행 다닐 때는 길거리·카페에서 연주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3대 독자인 김씨는 할아버지 제삿날이 되면 아내와 함께 여행지에서 제사상을 차렸다고 한다. 그는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조상님들을 세계여행 시켜 드린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도 ‘너희가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하신다”고 덧붙였다.
이 부부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훑은 뒤 인도 남부에서 좀 살아볼까 싶어, 인도와 가까운 네팔 포카라에 비자를 받으러 왔다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냥 눌러앉기로 했다. 동네에 짓다가 만 집을 인수해 손본 뒤 올해 초 보물섬을 열었다. 보물섬은 부부가 요리하고 손님을 맞는 곳이자 김씨가 오선지를 채우는 작업실이고, 최씨가 요가 수업을 하는 교실이다. 포카라에선 요가를 배우려는 장기 여행객들이 많아서 곳곳에 요가 수련장이 있다. 배우답게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최씨는 스스로 몸을 단련할 겸 돈도 벌 겸 요가를 가르친다.
부부는 저녁 먹는 손님들이 배를 채울 때쯤이면, 천장에 줄을 달아 그네처럼 만든 무대에 앉아 연주를 한다. 9월20일 밤,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둘러앉은 카페에서, 최씨는 긴 생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김씨는 살짝 눈을 감고 기타 줄을 튕겼다. 김씨의 외국식 이름은 ‘빅엠(M)’, 최씨는 ‘엘로디’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친 그대로, ‘빅 멜로디’가 보물섬을 채웠다.
물론, 네팔에서 사는 게 보기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국인들과 ‘일에 대한 리듬’이 다른 네팔인들을 식당에 고용해서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다. 강씨는 “말을 서로 못 알아듣는 식당 직원들과 마음이 안 맞아서 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능하면 영어를 하는 직원들을 채용하려고 하지만 네팔어를 전혀 모르면 서로 난감하다. 또 걸핏하면 전기가 나간다. 전력 사정이 워낙 나빠 네팔엔 지역마다 정전 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이 개발될 정도다.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곳에서 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렇게 불편한데도, 이들은 왜 포카라에서 살고 있을까? ‘낮술 부부’, ‘보물섬 부부’ 모두 “1년 내내 일할 필요가 없어서”라고 입을 모은다. 포카라는 건기(10~5월)엔 트레킹족들로 붐비지만, 우기(6~9월)가 되면 인적이 뜸해진다. 이들은 건기엔 개미처럼 돈을 벌고, 우기엔 가게를 닫고 베짱이처럼 놀러 간다. 방씨는 “이런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한 건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밥 먹고 살 수 있고 여행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김씨도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삶이 좋아 포카라를 택했다. 만약 여기에서 돈 벌려고 한다면, 처음 마음먹었던 것과 달리 다시 한국에서처럼 각박하게 살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 낳을 계획도 있다는 김씨에게 애가 있으면 이처럼 자유롭게 사는 게 불가능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아이도 엄마, 아빠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죠. 함께 데리고 다닐 거예요.” 포카라(네팔)/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풍광·여유에 반해 아예 눌러앉았다
식당·카페 차리고 욕심 덜내며 사니
“1년내내 일만 하진 않을 자유 얻어” 툭하면 단전에 말 안통하는 직원들
보기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지만
“전화 안받아도 되는 삶이 좋다” 방씨와 아내 강부형(38)씨가 포카라에 터를 잡은 것은 5년 전. 문화센터 사진강좌에서 만난 이들은 2006년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여행으로 두달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들른 곳이 포카라다. 트레킹 여행객들이 북적이는 관광지이면서도 고요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구름 없는 날엔, 페와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 안나푸르나의 7000~8000m급 높은 봉우리가 드리웠다. 2008년 이들은 전세 보증금을 빼들고 포카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왕창 올린 것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새 삶을 찾아나선 결단이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한 남편은 한국을 떠나는 데 별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야근이 너무 싫었다”고 방씨는 실토한다. 남편을 만난 뒤 여행 맛을 알게 된 강씨도 초음파 진단사 일을 그만두고 떠났다. 친구들은 “가난한 나라에 가서 왜 힘들게 사냐”고 말렸다. 당시 네팔은 내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정치도 불안정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부부는 포카라와 운때가 맞았다. 도착한 지 두달 만에 우연히 식당 터를 빌리게 됐고, 다음달 바로 가게 문을 열었다. 식당 이름은 평소 부부가 즐겨 하던 ‘취미’인 ‘낮술’로 정했다. 실제로 ‘낮술’ 초창기엔 마음 맞는 배낭여행객들을 만나면 부부가 함께 낮술에 취하기도 했었다.
네팔 포카라에서 식당과 민박 ‘낮술’을 운영하고 있는 방희종(왼쪽)·강부형씨 부부가 9월21일 네팔의 전통적인 후원:‘가정식 요리’인 달 바트가 차려진 식탁에 앉아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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