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47’ 개발자 칼라시니코프 사망
1억정 생산…정규군·테러범도 사용
생전 “무기 오용은 정치인 잘못 탓”
1억정 생산…정규군·테러범도 사용
생전 “무기 오용은 정치인 잘못 탓”
세계의 분쟁 현장을 뒤흔든 소형 화기의 대명사로 통하는 ‘AK-47’ 자동소총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23일(현지시각) 노환으로 숨졌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지난달 17일 러시아 중부 우드무르트 자치공화국 이젭스크의 한 병원에 위장출혈 증세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칼라시니코프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향년 94.
칼라시니코프는 러시아혁명 직후인 1919년 11월 알타이 지방의 쿠리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이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를 당해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는 시인을 꿈꾼 재주 많은 소년이었다.
삶의 방향이 바뀐 것은 19살 나이에 징집돼 기갑부대에 배치되면서부터다. 어려서부터 소질을 보인 ‘발명가’ 기질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칼라시니코프의 첫 발명품은 탱크에 장착된 기관총에서 발사되는 탄환 수를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장치였다. 남은 탄환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있어 실전에서 매우 유용했다”고 전했다.
1941년 독일군과 맞선 브랸스크 전투에서 다쳐 병상에 누운 그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독일군에 단발소총으로 맞서는 ‘전우’들을 위해 새 총기 개발에 골몰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소련군은 비공개로 무기개발사업에 착수했고, 경쟁을 뚫고 칼라시니코프가 제출한 디자인이 뽑혔다. ‘압토마트(자동) 칼라시니코프’의 약자와 개발 연도인 1947년에서 따온 ‘AK-47’ 자동소총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볍고, 다루기 쉬우며, 내구성까지 두루 갖춘 칼라시니코프의 자동소총은 즉각 소련군의 주력 개인화기로 채택됐다. 공로를 인정받은 칼라시니코프는 장성으로 진급했으며, 레닌상·스탈린상·노동영웅상에 이어 1994년엔 러시아 최고의 영예인 ‘조국 봉사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4년엔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국제 소형무기 감시 네트워크’(IANSA)의 자료를 보면, 지난 60여년 동안 러시아를 포함한 14개국에서 생산된 AK-47이 무려 1억정에 이른다. ‘위키피디아’는 현재 107개국 정규군이 이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무장반군과 테러범, 심지어 마피아 조직원 사이에서도 ‘최고의 무기’로 통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무력분쟁에 칼라시니코프가 등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24일치에서 “세계 40여개 지역에서 국지전이 불을 뿜은 1990년대, 칼라시니코프 소총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 연평균 30만명에 육박했다”고 전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보다 칼라시니코프가 더 많은 인명을 앗은 ‘대량살상무기’란 얘기다.
그는 2009년 11월 모스크바의 크레믈궁에서 열린 90살 생일 축하연에서 “조국의 국경을 지키려고 무기를 발명했다. 그 무기가 사용돼선 안 되는 곳에 가끔씩 등장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라고 항변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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