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후계자 마두로 작년 집권뒤
야권, 대선결과·민생 등 잇단 공세
물가 잡은 여당 지방선거 승리뒤엔
‘치안불안’ 명분 반정부시위 ‘시끌’
야권, 대선결과·민생 등 잇단 공세
물가 잡은 여당 지방선거 승리뒤엔
‘치안불안’ 명분 반정부시위 ‘시끌’
“붉은 베레모를 쓴 차베스 전 대통령의 초상이 건물마다 걸려 있고, 매일 그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반정부 시위대 진압에 나선 경찰은 차베스 전 대통령의 생전 연설을 크게 틀어 놓는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망 1주기를 맞은 5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는 여전히 그의 흔적이 뚜렷하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민중의 호민관’을 자처한 차베스 전 대통령은 과감한 복지정책과 참여민주주의를 뼈대로 하는 ‘볼리바르 혁명’을 주도하며 14년을 집권했다. 하지만 2년여에 걸친 암 투병 끝에 그가 58살을 일기로 숨진 이후, 극한의 정쟁과 경제 불안이 겹쳐 베네수엘라는 순탄치 않은 1년을 보냈다.
추모 열기 속에 치러진 지난해 4월 대선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집권 통합사회당(PUSV) 후보로 나섰다. 버스기사 출신 노동운동가인 그를 정치권에 입문시킨 이가 차베스 전 대통령이다. 선거 결과, 마두로는 1.83% 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불과 6개월여 전 치러진 대선에서 차베스 전 대통령한테 약 11% 포인트나 뒤진 ‘야권 단일후보’ 엔리케 카프릴레스 전 미란다 주지사가 48.95%를 득표하며 약진했다.
야권은 선거 결과를 선선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검토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카라카스의 거리를 점령했다. 선관위가 재검표를 통해 마두로 대통령 당선을 확정짓자, 야권은 ‘재검표 결과 보이콧’이란 어깃장을 놨다.
선거의 혼란이 사그라들자, 야권은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공격하는 쪽으로 초점을 옮겼다. 차베스 정부 때부터 15년째 ‘사회주의 경제정책’이 물가 폭등과 생필품 부족 사태를 불렀다고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실제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56%에 이르렀고, 생필품 부족 사태도 급격히 악화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칼을 빼 들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의회의 승인을 얻어 이른바 ‘물가와 전쟁’을 선포하고, 대통령령으로 생필품값을 절반 넘게 낮췄다. 일부 품목은 아예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기로 했다. 이를 거부하는 업체에는 군대를 동원해 강제집행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창고에 쌓아놓은 생필품이 다량 발견되기도 했다. 날뛰던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7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 통합사회당은 약 54%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330여 지방정부 가운데 240여곳을 여당이 휩쓴 반면, 야권은 단 75곳을 얻는데 그쳤다. 지방선거를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로 몰아간 야권으로선 당혹스러운 결과다.
“불타는 타이어, 복면을 한 젊은이, 시위대와 진압경찰의 충돌 장면이 지난 몇주 동안 세계 거의 모든 언론을 뒤덮은 베네수엘라발 뉴스다. 하지만 이런 혼란상은 카라카스 동부 부유층 거주지역의 풍경이고, 노동자와 서민이 몰려사는 서부지역은 평온하다.”
미국 싱크탱크 ‘라틴아메리카 워싱턴사무소’(WOLA)의 레베카 핸슨 연구원은 4일 이 단체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달 12일부터 계속된 베네수엘라 야권의 반정부 시위의 ‘실체’가 과장돼 전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엘리아스 하우아 베네수엘라 외교장관도 4일 유엔 인권위원회에 나와 “나라 안팎에서 합법 정부를 겨냥한 심리전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치안 불안을 이유로 촉발된 이번 시위 사태를 주도한 이는 극우 성향의 야권 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다. 그는 카라카스 외곽 차카오 시장 출신으로, 2002년 차베스 정권을 겨냥한 쿠데타에 적극 가담한 인물이다. 지난달 중순 구금된 그는 차베스 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영상 메시지를 내어 “거리시위를 지속하라”고 독려했다. 야권은 이미 마두로 대통령의 대화 제의도 거부했다. 차베스 사후 1년, 베네수엘라의 현실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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