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새 영토” 선언
합병조약 전격 체결
프 “러 G8 자격정지 결정”
합병조약 전격 체결
프 “러 G8 자격정지 결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크림반도 병합을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크림공화국 주민투표에서 약 97%의 찬성으로 러시아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지 단 이틀 만의 일이다. 크림공화국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외교적 타협을 모색하던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5분께(현지시각) 모스크바의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 나와 “크림반도 주민의 뜻에 따라 크림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을 러시아의 새 영토로 선언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투데이>(RT) 방송의 생중계 화면을 보면, 의사당에선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의사당에 미리 도착해 있던 크림공화국 대표단과 즉석에서 영토 합병 조약 체결식을 열었다. 의사당 안에선 러시아 국가가 울려퍼졌다. 1991년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USSR)의 해체 이후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즉각 성명을 내어 “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지 않으며,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크림반도 합병 조약은 원인무효”라고 주장했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현지 라디오 <유럽1>에 출연해 “러시아의 주요 8개국(G8) 회원 자격을 정지시키기로 다른 7개국과 협의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다음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담 때 이번 사태를 다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날 합병 선언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40분 남짓한 연설을 통해 크림반도와 러시아의 역사적 관계를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크림반도와 러시아는 고대로부터 역사와 문화, 가치를 공유해왔다”며 “러시아계와 우크라이나계, 크림타타르족까지 다양한 종족과 문화가 뒤섞여 있는 크림반도는 러시아 전체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련 시절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할양한 것은 당시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일부였기 때문”이라며 “소련이 붕괴하자 (우크라이나의 독립으로) 크림반도는 남의 나라, 빼앗긴 땅이 되고 말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크림반도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러시아의 일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오시프 스탈린 정권 아래서 강제이주 등으로 탄압당한 크림타타르족의 반발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여러 차례 내놨다. 그는 “크림반도에선 모든 종족과 문화가 존중받아야 한다.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타타르어 모두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며, 러시아는 추가 영토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어 “국제적 기준에 따라 아무런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를 향유해야 함에도, 불행히도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언어를 빼앗기는 등 탄압을 당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 야권이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구성한 과정을 ‘쿠데타’로 규정했다. 크림반도 합병을 위한 ‘명분’인 셈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겨냥한 날선 비판도 내놨다. 그는 “나토의 동유럽 확장과 동유럽 국가에 설치한 미사일방어(MD) 시스템 등이 러시아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다”며 “키예프 과도정부가 나토 가입을 언급한 것은 러시아의 역사적 땅이자 러시아군 힘의 상징인 세바스토폴에 나토의 군함이 들어온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무책임하게 적색선을 넘은 건 미국과 유럽연합”이라고 주장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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