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선
후세인 돈 받고 갈리 전 총장에 뇌물 시도
‘워싱턴 특권계급’ 인맥·신임 적극 활용
1970년대 중반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동선씨가 ‘유엔 게이트’의 주역으로 다시 등장했다. 박정희 정권을 위해 미국 의회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았던 그가, 이번엔 사담 후세인을 위해 유엔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7일(현지시각) 공개된 유엔의 ‘이라크 석유-식량 계획 비리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박씨는 1996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100만달러를 뇌물로 주려 했다. 이 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유엔에 영향력을 행사할 길을 찾던 이라크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받은 수백만달러 가운데 일부였다. 유엔 관계자는 “뇌물의 목적은 갈리 총장이 좀더 유연한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에 대한 갈리 총장의 신임을 십분 활용했다. 1993년엔 두 사람이 자주 가던 모임을 이라크계 미국인 사업가 사미르 빈센트에게 알려줘 이라크와 갈리 총장의 ‘은밀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갈리 총장이 박씨를 일급비밀을 흘려주는 귀중한 정보원이자 오랜 친구로 여겼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갈리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자 모리스 스트롱 당시 유엔개혁 조정관에게 접근했다. 박씨는 1997년 이라크를 두 차례 방문해 170만달러를 받았고, 이 중 100만달러를 스트롱의 아들이 투자한 석유회사에 투자했다. 박씨는 170만달러를 골판지 상자에 담아 가져왔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스트롱은 처음엔 박씨한테서 돈이나 수표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그가 서명한 수표가 발견되자 사임했다.
보고서는 “박씨는 워싱턴 노멘클라투라(특권계급)의 완벽한 한 부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전력을 알고 거리를 뒀던 스트롱도 세계은행에 근무하면서 그의 영향력을 눈으로 확인하고선 끌려들어갔다. 박씨는 워싱턴의 고급 사교클럽인 ‘조지타운 클럽’을 1997년 사들이기 위해 이라크에서 받은 돈 가운데 50만달러를 쓰기도 했다.
유강문 기자, 외신 종합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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