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갈등고조] 갈림길 선 이라크 1. 내전으로 가는 지름길?
2. 끈질긴 선거 연기론
3. 미국은 명예롭게 물러날까 “이라크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는 것은 강력하고 광범위한 저항만 부를 뿐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미군 철수를 결정한다면 자칫 내전을 부를 수 있다. 집권 2기를 맞은 조지 부시 행정부에게 남은 선택은 상황을 천천히 악화시키느냐 빨리 악화시키느냐,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미 랜드연구소 제임스 도빈스 국제안보 및 국방정책센터 국장은 외교·안보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직면한 상황을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모래 구덩이’와 ‘진창’에 비유했다. 그는 “이라크 민심을 잃음으로써 미국은 이미 전쟁에서 패했다”며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분별력있는 판단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진창 빠졌다” 안팎서 비판 고조
철군까진 최소 2년이상 더 걸릴듯
군경훈련·민심확보 여부가 관건
부시 대통령 집권 2기 공식 출범 열흘만인 오는 30일 이라크에서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이 치러지는 건 여러 면에서 상징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을 앞두고 지난 15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로 이라크 정책은 국민의 평가를 마친 셈”이라고 주장했으나, 미국이 이라크 ‘진창’에 빠져 있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행정부 내부에서도 많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진보진영의 수장격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최근 <엠에스엔비시방송>에 나와 “이라크는 부시 행정부의 베트남이 될 것”이라고 쏘아부쳤다. 지난해 5월 부시 대통령이 ‘주요 전투’ 종료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한달 평균 각각 17명과 142명에 불과했던 미군 사망자 및 부상자가 최근 들어선 각각 82명과 808명에 이르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에 딸린 국가정보센터가 이달 초 내놓은 보고서는 “이라크는 아프가니스탄을 대신해 테러범들의 훈련장이 됐으며, 이들이 이라크에서 쌓은 ‘전문성’은 향후 수십년동안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기에 빠진 부시 행정부에게 도빈스 국장이 내린 처방은 모두 3가지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점진적 감축 및 궁극적 철수와, 저항세력 소탕을 위한 이라크 치안인력 훈련 강화, 그리고 이 과정에 이란을 비롯한 이웃나라와 유럽연합 등 동맹국의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러트웍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함으로써 미국은 오히려 이라크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안정된 이라크의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최근들어 ‘철군론’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가디언>은 22일 “미국과 영국에서 이라크 주둔 병력을 가능한 한 빨리 철수시키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압승이 예상되는 시아파 정치지도자들도 이미 새 정부를 구성하는 대로 미군을 포함한 17만3천여 외국군의 구체적인 철수계획 공개를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문제는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의 전제조건인 이라크 치안인력의 훈련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6일 “지난 12일 국방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재까지 훈련을 마친 인력은 경찰 5만3천명, 방위군 4만명, 정규군 4천명 수준”이라며 “현재까지 훈련 진척상황을 놓고 볼 때 미 국방부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경찰 13만5천명, 방위군 6만2천명, 정규군 2만4천명 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가디언>은 22일 최근 이라크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남부지역을 둘러보고 온 하원 국방위 관계자의 말을 따 “이라크 주둔군이 철수할 수 있기까지는 적어도 10년에서 15년은 걸릴 것”이라며 “이라크인들은 치안을 떠맡을 수 없는 상태며, 향후 수년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존 루이스 개디스 하버드대 교수(역사학)는 “이라크를 베트남전에 비유하는 건 아직은 이르다”며 “침묵하고 있는 다수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라고 지적했지만, ‘민심’을 얻는 해답은 다시 점령의 종식으로 집약된다. 워싱턴의 정책연구소(IPS) 필리스 베니스 연구원은 “이라크에서 ‘동맹과의 책임분담’을 거론하지만, 점령을 끝낸 뒤에라야 책임분담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심을 얻기 위해선 철군을 해야 하는데, 철군을 위해선 민심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끝없는 순환논리에 갇힌 부시 행정부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라크 총선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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