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제작 김태권, 사진 이은경
[토요판] 커버스토리
오바마-푸틴의 ‘가상 설전’
오바마-푸틴의 ‘가상 설전’
▶ 우크라이나가 난리입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된 데 이어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사는 동부지역도 분리독립해 러시아에 붙겠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부는 발끈합니다. 내전 위기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왜 일어났을까요?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키를 쥔 사람은 두 명입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들이 만나서 말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상상했습니다. 서로 할 말이 많다는군요.
오바마 미스터 푸틴, 오랜만~. 이틀 전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만났더군. 요즘 두 사람이 나를 따돌리면서 잘 지내는 것 같던데. 중국에서도 웃통 벗고 근육 자랑 했어? 나도 사실 그 정도 근육은 있다고.
푸틴 당신도 농구 하면서 쇼를 하잖아. 그런데 이 자리에는 사실 시진핑도 같이 와야 얘기가 되는데…. 근데 시진핑이 요즘 콧대가 높아져서….
오바마 그런데 당신들 요즘 왜 그래? 내가 러시아에 얼마나 잘해줬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이렇게 내 체면을 구겨? 당신 전임자인, 그 주정뱅이 보리스 옐친을 종처럼 다루던 클린턴과 부시와는 달리 나는 러시아를 미국의 진정한 동반자라고 띄워주기까지 했는데….
오바마는 취임하면서 러시아 등에 대한 이른바 ‘리셋’(재설정) 외교정책을 표방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 때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수정해,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란, 쿠바 등 적대국가에 대한 관계개선 의지를 밝혔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특히 군비감축과 이란 핵문제 등을 공동으로 해결하자며 동반자적 관계 구축을 추구했다.
푸틴 흥! 나도 할 말이 없는 줄 알아? 러시아가 미국에 가장 요구하던 게 뭐야? 니들 서방 세력이 내 구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거 아니야. 그런데 유럽연합이 계속 동쪽으로 확장하며 우리 구역을 침범했잖아. 우크라이나도 그래.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려고 시도하다가 이 사달이 났잖아. 이러면서 무슨 우리를 동반자로 여긴다는 거야?
우크라이나·조지아 소수민족 운동의 배후
유럽연합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와 통상조약을 확대하는 조약을 맺으려 했다. 이는 유럽연합 가입의 전단계다. 소련에 대항하는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소련이 해체된 뒤에 더욱 확대됐다. 반면, 이에 맞서던 소련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됐다.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이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물론이고, 소련의 자치공화국이던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도 1999년 이후 나토에 가입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2009년 4월에도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가입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옛 그루지야)에도 가입을 약속했다.
오바마 알바니아 등이 나토에 가입한 건 부시 시절인 2008년에 이미 결정된 거야. 내가 취임한 이후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의 회원이 된 거 말고는 유럽연합과 나토의 확장은 없었잖아. 나는 당신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미사일방어(MD)망을 국내 보수파의 비판을 무릅쓰고 유보시킨 사람이라고. 이거 왜 이래.
푸틴 당신이 무슨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철폐했어. 부시 시절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새로운 걸로 바꾼 거지. 우리가 보기엔 별 차이도 없어.
미사일방어망은 공격해 오는 미사일을 대기권 안팎에서 요격해 격추하는 프로그램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본격 추진했던 것으로, 그 방어망 기지를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 두려고 했다. 러시아는 미사일방어망이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오바마는 취임 뒤 이 미사일방어망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발표했다. 동유럽 국가 대신 지중해 등에 정박한 미군 함정의 이지스 시스템에 기반해 먼저 설치하고, 나중에는 지상기지도 설치하겠다는 프로그램으로 전환했으나, 진전은 없다.
오바마 내가 미사일방어망에 별 관심이 없고, 부시 시절 전쟁 미치광이 네오콘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 그리고 내가 걔들한테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하라고 강요했나? 걔들이 제 발로 찾아와 끼워달라고 하는 걸 어떡하나. 그리고 걔들이 왜 우리한테 왔겠어. 러시아가 무서워서지. 실제로 러시아는 조지아 등 나라와 몇차례 전쟁까지 했잖아. 우리가 아니라 당신네 러시아가 위협이지.
푸틴 생각해 봐라. 미국과 붙어 있는 멕시코가 러시아나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한다면 당신들이 가만있겠냐? 조지아와 전쟁을 한 것은 우리를 지키려고 한 거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우리에게서 분리독립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그들 국가 내에 있는 소수민족이나 주민들도 분리독립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도 그거지. 우리는 조지아에서나 우크라이나에서나 러시아계 주민 등 소수주민들의 정당한 분리독립 요구를 지지한 것일 뿐이야.
오바마 무슨 소리!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의 소수민족 문제는 원래 소련이 만든 건데. 소련 시절 러시아계 주민들이 정책적으로 들어갔고, 다른 소수민족들도 심었잖아. 스탈린이 사할린에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대량 이주시켰지. 소련은 영내의 민족들을 뒤섞어 분할통치하고 서로 견제시켰어. 모든 건 당신들의 업보고 원죄지.
푸틴 스탈린 선배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때 소련이라는 같은 나라 안에서 국가와 주민들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서로 뒤섞인 것일 뿐이야. 그리고 원인이 어떻든 소수계 주민들도 자신들의 복리와 생존을 위해 분리독립할 권리가 있지.
오바마 문제는 러시아가 그들의 분리독립을 부추기는 거야.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내 남오세티야 분리독립을 지지하면서 조지아를 침략했지. 이런 무력개입을 한번도 아니고 4차례나 했어. 조지아나 우크라이나가 벌벌 떨면서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애걸하는 게 당연하지.
소련 시절 15개 공화국 내에는 스탈린이 이주시켜 만든 소수민족 공동체가 모두 있다. 조지아 내의 압하지야와 오세티야족, 아르메니아 내의 아제르바이잔족, 아제르바이잔 내의 아르메니아족, 키르기스스탄 내의 우즈베크족, 우즈베키스탄 내의 카자흐족, 몰도바 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러시아계 및 우크라이나계 주민 등이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1990년 조지아로부터 남오세티야 분리독립, 1992년 조지아로부터 압하지야 분리독립, 1992년 몰도바로부터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분리독립, 1992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리독립 분쟁에 무력으로 개입했다. 2008년에는 다시 조지아를 전면 침공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분리독립을 재확인해줬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서 9·11까지
푸틴 국가에도 생존권이 있어. 특히 너희 미국이나 우리 러시아 같은 대국에는 서로를 존중할 세력권이 있는 거 몰라? 시쳇말로 나와바리(구역). 미국도 옛날에 유럽 열강한테 남미는 우리 구역이니 개입하지 말라는 먼로 독트린을 들이밀었잖아. 소련이 1960년대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려다 철수한 것도 너희 세력권을 인정했기 때문이야.
오바마 이제야 본론이 나오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냐? 지금 러시아는 과거의 소련이 아냐. 우리 미국과 같은 급이 아니라고. 우리는 러시아를 소련 대하듯이 할 생각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나토는 더이상 소련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이 아니라, 냉전 이후 국제질서를 담당하는 안보기구야. 실제로 나토는 발칸반도 분쟁을 해결하고, 아랍의 봄 이후 리비아 등의 분쟁도 해결했지.
푸틴 나토의 그런 활동도 결국은 미국 등 서방만 좋은 일 시키는 거잖아. 그리고 착각은 네가 하는 거지. 지금은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직후 미국이 전세계의 대장 행세를 하던 때가 아냐. 우리도 주정뱅이 옐친이 이끌던 러시아가 아니고. ‘포스트 냉전’ 시대는 끝났어.
‘포스트 냉전’ 시대는 소련과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시대를 말한다.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이 맞서던 대결의 냉전시대가 아니라, 미국 주도하에 다자 국가들이 협력하는 체제를 말한다. 냉전시대 미-소의 양극체제에 비해 미국의 일극체제라 불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으로 주요 2개국(G2) 체제로 대체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오바마 포스트 냉전 시대는 미국이 대장인 체제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체제야. 뭐, 물론 미국이 이를 주도하긴 했지. 쩝. 그런데 미국 말고 국제질서를 지킬 힘과 책임감이 있는 나라가 있나? 너희 소련이 무너진 뒤 국제사회는 지정학적 대결이 아니라, 무역자유화, 핵 비확산, 기후변화 등 자유주의에 바탕한 다자간 협력체제를 구축해 왔잖아. 미국이 이렇게 힘들여 일하는 사이 러시아나 중국도 성장한 거 아냐.
푸틴 이러니 당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거야. 기후변화협약이 안 되는 게 누구 때문인가? 부시가 교토의정서를 휴지로 만들었잖아. 다자간 무역자유화? 너네가 먼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지금은 티피피(TPP)라는 거대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블록을 만들려고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미사일방어망을 여전히 만들면서 무슨 핵 비확산이니 군비감축이야. 다자간 협력체제가 아니라 미국 너네만 대장이니까 예외로 하고 나머지들은 그냥 따라오라는 거 아냐.
오바마 우리가 없었으면 네 든든한 친구들인 러시아 재벌 올리가르히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겠어? 그리고 이란이 핵을 가진다면 러시아도 안전할까? 이란을 지배하는 이슬람주의 세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더 큰 위협이지. 아프간이나 체첸에서 호되게 당한 적 있잖아. 이란이나 이슬람주의를 같이 제어하자는데 왜 러시아는 사사건건 어깃장이야?
소련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했다가 미국이 지원하는 이슬람주의 무자헤딘 세력에 패퇴하며 10여년 만에 철수했다. 이는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됐다. 소련 해체 뒤 러시아의 체첸에서도 이슬람주의 분리세력들의 분리독립을 추구하자, 러시아는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이를 막았다.
푸틴 이슬람주의 확산의 원죄는 미국에 있지. 미국이 아프간에서 소련을 패퇴시키려고 이슬람주의 세력을 지원했잖아. 그들이 나중에 이슬람권 전역에 퍼졌고 결국 9·11 테러까지 일으켰지. 실체도 없는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이슬람 사람들을 더 화나게 만들고.
오바마 그, 그건. 어쨌든 나는 반성하고 잘해보려고 했잖아. 취임할 때 일방주의를 지양하고, 다자간 협력질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외교노선을 표방한 거 못 들었어? ‘악의 축’이라던 이란이나 북한과도 잘 지내보겠다고 했고, 핵 없는 세상이라는 대담한 정책도 내놨잖아. 그런데 이란과 북한은 내 선의를 뭉개면서 오히려 자기네 핵개발에 더 이용하고 있어. 동맹국들도 말을 안 듣고. 일본은 과거를 계속 미화하면서 동북아에서 동맹구도를 방해하고, 유럽, 특히 독일은 너네 러시아와 직거래를 하려고 하질 않나…에휴.
푸틴 뭐 당신이 부시와는 다르다는 건 인정해주지. 그런데 그건 부시 때 일방적으로 해보니 안 되니까 그런 거 아냐? 탈레반을 록밴드로 알았던 그 무뇌아 부시가 분탕질을 하면서 미국의 한계가 드러나고 바닥났지. 고작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쩔쩔맸잖아. 그런데 부시 그 친구, 나와는 마초 성향이 비슷해서 개인적으로 통하는 건 많았는데.
부시와 네오콘에 관해선 의견 일치!
오바마 빌어먹을 부시와 네오콘들. 미국을 결딴내고 나에게 이렇게 똥바가지를 씌우다니. 그래도 부시에 대한 평가는 일치하네…. 어쨌든 미국은 이제 참을 만큼 참았어. 러시아가 조지아 등과 전쟁하며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 것까지는 봐줬어. 그런데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국경선을 변경한 거는 너무 막 나간 거야. 더이상의 국경선 변경은 용납할 수 없어. 러시아 국경선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상징이야. 이를 바꾸는 건 우리 미국과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걸로 받아들이겠어.
푸틴 용납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힘이 있다면 해봐라. 경제제재는 이미 우리가 감수하고 있으니, 남은 것은 군사개입뿐이지. 미국이 군사개입을 할 수 있나? 그 잘난 나토를 동원한다고? 독일은 이미 경제제재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오바마 ….
푸틴 당신도 간파했겠지만, 내 야망은 과거 러시아제국과 소련 때와 같이 우리 러시아를 다시 세우는 거다. 소비에트연방 같은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과거 소련 공화국들과의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통해서 유럽연합에 필적하는 유라시아연합을 만드는 건 가능할 거야. 그런데 난데없이 유럽연합이 끼어들어 우크라이나를 꼬드겨 갔어. 유라시아연합에서 우크라이나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인데. 그래서 내가 유럽보다 더 파격적인 지원책을 줬는데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들이 들고일어났어. 내 친구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타도하고, 우크라이나를 영원히 러시아 영향권에서 이탈시키려 한 거라고.
오바마 유라시아연합? 그건 당신 망상이지. 러시아가 미국 수준에 맞춰 맞짱 뜨려고 하면 망가져. 러시아가 지금 버티는 게 따지고 보면 석유 덕분이잖아. 그런데 석유값이 떨어지고 있고, 이제 셰일가스 개발로 러시아 석유와 가스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 소련이 억지로 자원을 미국과의 대결에 집중하다가 망한 거 잊었어?
“서로 잘 먹고 잘살아 보잔 건데
당신들 나 재임할 때 잘해야 돼
70년대 카터가 잘해보려 했는데
소련이 아프간에서 분탕질을 쳐
레이건이란 노인네가 등장했잖아”
“전략적 동맹관계가 바뀌고 있어
너넨 70년대에 중국과 손잡았지
근데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하려고 손을 잡았어
최근엔 가스공급 협정도 맺었지”
유라시아연합은 푸틴이 추진중인 옛소련 내의 공화국들과의 정치적 경제블록이다.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은 이미 여기에 동의했고,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푸친은 내년쯤에 유라시아연합을 발표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푸틴 다른 공화국은 몰라도, 나와 우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분리독립될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우리 러시아가 탄생한 곳이 지금 우크라이나 땅이고, 언제 우크라이나가 한번이라도 홀로 나라로 선 적이 있어? 어쨌든 우크라이나 독립은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인정한다 쳐. 그래도 우크라이나 내의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까지는 포기할 수 없어. 크림반도를 합병하긴 했는데, 사실 나도 우크라이나 동부까지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우리도 부담스럽거든. 우크라이나 동부는 이미 한물간 중공업 지대로, 합병해봤자 얻는 거보다 우리가 써야 하는 비용이 더 커. 우크라이나가 우리의 영향권에만 있어준다면, 서방의 품으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동부를 합병할 필요가 없지. 내가 동부의 러시아계 주민들에게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유보하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이야. 나 눈치없는 사람 아냐. 미국 체면 세워줄게. 문제는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 나도 모르겠다는 거야. 오바마 나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용인해줄 용의가 있어. 이미 내가 지난 4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인접국을 위협하는 ‘지역 강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는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너네 세력권을 인정하겠다는 거잖아. 우크라이나 사태의 문제는 내가 천명했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정책으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거야. 아시아 중시 정책을 발표해놓고는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지난 4월 간신히 취임 이후 처음으로 동아시아 국가만을 상대로 한 순방을 했는데, 중국이 그 직후 남중국해에서 석유시추를 강행했어. 우크라이나에서 이렇게 체면을 구기고 있으니 우리를 얕본 거잖아. 푸틴 나도 알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석유시추가 우크라이나 사태보다도 더 심각하겠지. 근데 봐봐. 미국은 중국에 경제제재 등은 고사하고, 당신이 직접 언급도 못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일본, 동남아 국가들과 벌이는 영유권 분쟁의 본질은 너희랑 중국이랑 구역싸움 벌이는 거잖아. 몇년 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나자 “규칙을 지키라”며 중국을 윽박지르던 호기는 어디 갔나? 왜 우리한테만 그래? ‘포스트 냉전’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0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임을 선포하며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정책을 표방했다. 이는 점증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성장과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는 미국 대외정책의 전략적 변화였다. 특히 미국은 그해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과 다투던 남중국해 군도들의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며 중국과 대결했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남중국해 항해규칙 제정 등을 촉구하며 ‘규칙을 지키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5월초 베트남과 영유권을 다투는 남중국해 시사군도에서 석유시추를 강행했다. 이곳은 중국이 베트남과 공동개발을 약속한 곳이다. 푸틴 거듭 말하지만, 미국이 혼자 대장 행세 하던 포스트 냉전 시대는 끝났어. 우크라이나에서나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아무것도 못하는 이유지. 이를 직시해야 할 거야. 오바마 포스트 냉전 시대 질서가 끝났다, 신냉전이 도래했다, 냉전시대의 지정학이 다시 회귀했다는 등 입방아가 많다는 거 잘 알아. 미국이 옛날 같지는 않지. 그래도 미국 없이 세계 질서가 잘 돌아갈까? 미국이 옛날처럼 군대 막 동원하고 그럴 처지는 아니지만 셰일가스를 개발해서 이제 중동 기름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전통산업의 경쟁력도 다시 살아나고 있어. 또 정보기술, 문화, 법규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가 표준을 세우며 주도하고 있잖아. 우리보고 제국주의니 뭐니 하는데, 가당치 않아. 러시아나 중국의 위협을 막아달라고 인근 국가들이 우리한테 매달리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초대받은 제국’이지. 미국은 세계에서 60개국 이상과 동맹 등 군사관계를 맺고 있지만 러시아는 겨우 8개고, 중국은 딸랑 북한 하나뿐이잖아. 푸틴 협력 관계가 많으면 뭐하나. 너희 부담만 커지지. 그리고 잘 봐. 큰 전략적 동맹 관계가 바뀌고 있어. 1970년대 미국이 우리 소련을 포위하려고 중국과 손을 잡았잖아. 근데 이제 중국과 우리가 너희 미국을 상대하려고 손을 잡았어. 나는 21일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과 대규모 가스공급 협정을 타결했어. 10년을 끌어온 협상인데 급박한 최근 정세가 우리를 떠밀었지. 중국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받게 됐고, 우리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어. 오바마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무슨 타도 중국, 타도 러시아를 외치는 게 아니잖아. 서로 잘 먹고 잘살아 보자는 건데. 중국이나 러시아 너네 내가 재임할 때 잘해야 돼. 70년대 민주당 선배 카터가 소련과 잘해보려고 했는데 소련이 아프간에서 분탕질을 치는 바람에 레이건이라는 모진 노인네가 등장했잖아. 레이건 때문에 소련이 얼마나 피곤했냐. 지금 미국 내 여론이 심상치 않아. 제2의 레이건이 등장해서 중국이나 러시아와 맞짱 뜨자고 나서면 누가 이기겠냐? 우리 미국도 피곤하겠지만 결국 중국이 못 견딜걸? 푸틴 그때는 미국의 적이 소련 하나뿐이었지. 중국은 미국을 도와줬고. 근데 지금은 어때. 나 푸틴과 러시아도 이제 간단치 않지만, 중국은 더욱 그럴걸. 러시아가 중국과 분쟁을 해봐서 아는데, 중국 애들은 안보와 영토에 대해서는 완전 단호해. 중-소 분쟁, 중-인 전쟁, 중-월 전쟁 등을 봐. 건드리면 막 전쟁해버려. 당신네 나라 외교 현인이라는 헨리 키신저도 인정했잖아. 오바마 중국이 많이 크긴 했지. 그런데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 꼴일걸. 중국이 매년 7~8% 이상의 성장을 못하면 그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어. 이제 그런 성장은 한계에 왔어. 그리고 중국의 주변을 봐라. 온통 우리 동맹국들로 둘러싸여 있지. 미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왜 그리 무능한가 중국은 올해 구매력평가(PPP) 기준에서 실질 국내총생산이 19조달러로, 미국의 18조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푸틴 그래서 중국이 더욱 단호한 거야. 올해 초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고, 남중국해에서는 석유를 시추했다. 중국은 절박하기 때문에 더욱 거침이 없어. 근데 미국은 뭘 하고 있어? 동남아 동맹국들이 뭐라 그러지 않아? 내가 충고 하나 할까. 중국의 동맹국은 북한 하나라고 했지. 그런 중국이 유일한 동맹국을 포기할 거 같아? 오바마 너네 행정부가 중동이나 이란에 쏟는 외교력의 일부나마 북한 핵문제 해결에 행사했다면 동아시아 정세가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걸. 아시아태평양으로 돌아오겠다면서 본질적 문제 중의 하나인 북한 핵문제에는 왜 그렇게 무관심하냐? 그건 전략적 무관심이 아니라 무능한 거지. 오바마 러시아도 중국의 부상이 부담스럽고, 미국이 적당히 견제해주길 바라잖아. 그러려면 나와 미국에 여지를 줘야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이란 핵문제와 시리아 내전 해결 등에서 협력해줘. 나도 솔직히 인정할게. 우리 힘이 예전 같진 않아. 그렇다고 미국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냐.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동중국해나 서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걸 보고 싶겠냐? 100년 전 러일전쟁이나 청일전쟁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나길 바랄까? 푸틴 너네랑 영국 중심의 서방세력, 즉 해양세력은 유라시아 대륙 내부에서 패권국가를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폈어. 그게 바로 근대 이후 서방 지정학의 핵심 요점이지. 러시아의 재기나 중국의 부상을 놓고 벌써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를 해체하려는 비자유주의 세력의 동맹이라고 난리를 피우지. 당신네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이번에 이걸로 도배를 했더라. 포스트 냉전이 끝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해. 하지만 그 결론은 달라야 해. 우크라이나 사태는 두고 보자. 우리도 더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아. 우리가 그럴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를 잘 달래라.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포스트 냉전이 끝나니 그 상징인 러시아의 국경선도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길 바라. 오바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그만하자. 이것만은 명심해. 미국과 같은 급의 대우를 바라서는 안 돼.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고.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그걸 푸는 시작점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클레이 제작 김태권, 사진 이은경
클레이 제작 김태권, 사진 이은경
“서로 잘 먹고 잘살아 보잔 건데
당신들 나 재임할 때 잘해야 돼
70년대 카터가 잘해보려 했는데
소련이 아프간에서 분탕질을 쳐
레이건이란 노인네가 등장했잖아”
“전략적 동맹관계가 바뀌고 있어
너넨 70년대에 중국과 손잡았지
근데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하려고 손을 잡았어
최근엔 가스공급 협정도 맺었지”
유라시아연합은 푸틴이 추진중인 옛소련 내의 공화국들과의 정치적 경제블록이다.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은 이미 여기에 동의했고,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푸친은 내년쯤에 유라시아연합을 발표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푸틴 다른 공화국은 몰라도, 나와 우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분리독립될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우리 러시아가 탄생한 곳이 지금 우크라이나 땅이고, 언제 우크라이나가 한번이라도 홀로 나라로 선 적이 있어? 어쨌든 우크라이나 독립은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인정한다 쳐. 그래도 우크라이나 내의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까지는 포기할 수 없어. 크림반도를 합병하긴 했는데, 사실 나도 우크라이나 동부까지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우리도 부담스럽거든. 우크라이나 동부는 이미 한물간 중공업 지대로, 합병해봤자 얻는 거보다 우리가 써야 하는 비용이 더 커. 우크라이나가 우리의 영향권에만 있어준다면, 서방의 품으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동부를 합병할 필요가 없지. 내가 동부의 러시아계 주민들에게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유보하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이야. 나 눈치없는 사람 아냐. 미국 체면 세워줄게. 문제는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 나도 모르겠다는 거야. 오바마 나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용인해줄 용의가 있어. 이미 내가 지난 4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인접국을 위협하는 ‘지역 강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는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너네 세력권을 인정하겠다는 거잖아. 우크라이나 사태의 문제는 내가 천명했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정책으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거야. 아시아 중시 정책을 발표해놓고는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지난 4월 간신히 취임 이후 처음으로 동아시아 국가만을 상대로 한 순방을 했는데, 중국이 그 직후 남중국해에서 석유시추를 강행했어. 우크라이나에서 이렇게 체면을 구기고 있으니 우리를 얕본 거잖아. 푸틴 나도 알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석유시추가 우크라이나 사태보다도 더 심각하겠지. 근데 봐봐. 미국은 중국에 경제제재 등은 고사하고, 당신이 직접 언급도 못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일본, 동남아 국가들과 벌이는 영유권 분쟁의 본질은 너희랑 중국이랑 구역싸움 벌이는 거잖아. 몇년 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나자 “규칙을 지키라”며 중국을 윽박지르던 호기는 어디 갔나? 왜 우리한테만 그래? ‘포스트 냉전’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0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임을 선포하며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정책을 표방했다. 이는 점증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성장과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는 미국 대외정책의 전략적 변화였다. 특히 미국은 그해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과 다투던 남중국해 군도들의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며 중국과 대결했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남중국해 항해규칙 제정 등을 촉구하며 ‘규칙을 지키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5월초 베트남과 영유권을 다투는 남중국해 시사군도에서 석유시추를 강행했다. 이곳은 중국이 베트남과 공동개발을 약속한 곳이다. 푸틴 거듭 말하지만, 미국이 혼자 대장 행세 하던 포스트 냉전 시대는 끝났어. 우크라이나에서나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아무것도 못하는 이유지. 이를 직시해야 할 거야. 오바마 포스트 냉전 시대 질서가 끝났다, 신냉전이 도래했다, 냉전시대의 지정학이 다시 회귀했다는 등 입방아가 많다는 거 잘 알아. 미국이 옛날 같지는 않지. 그래도 미국 없이 세계 질서가 잘 돌아갈까? 미국이 옛날처럼 군대 막 동원하고 그럴 처지는 아니지만 셰일가스를 개발해서 이제 중동 기름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전통산업의 경쟁력도 다시 살아나고 있어. 또 정보기술, 문화, 법규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가 표준을 세우며 주도하고 있잖아. 우리보고 제국주의니 뭐니 하는데, 가당치 않아. 러시아나 중국의 위협을 막아달라고 인근 국가들이 우리한테 매달리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초대받은 제국’이지. 미국은 세계에서 60개국 이상과 동맹 등 군사관계를 맺고 있지만 러시아는 겨우 8개고, 중국은 딸랑 북한 하나뿐이잖아. 푸틴 협력 관계가 많으면 뭐하나. 너희 부담만 커지지. 그리고 잘 봐. 큰 전략적 동맹 관계가 바뀌고 있어. 1970년대 미국이 우리 소련을 포위하려고 중국과 손을 잡았잖아. 근데 이제 중국과 우리가 너희 미국을 상대하려고 손을 잡았어. 나는 21일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과 대규모 가스공급 협정을 타결했어. 10년을 끌어온 협상인데 급박한 최근 정세가 우리를 떠밀었지. 중국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받게 됐고, 우리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어. 오바마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무슨 타도 중국, 타도 러시아를 외치는 게 아니잖아. 서로 잘 먹고 잘살아 보자는 건데. 중국이나 러시아 너네 내가 재임할 때 잘해야 돼. 70년대 민주당 선배 카터가 소련과 잘해보려고 했는데 소련이 아프간에서 분탕질을 치는 바람에 레이건이라는 모진 노인네가 등장했잖아. 레이건 때문에 소련이 얼마나 피곤했냐. 지금 미국 내 여론이 심상치 않아. 제2의 레이건이 등장해서 중국이나 러시아와 맞짱 뜨자고 나서면 누가 이기겠냐? 우리 미국도 피곤하겠지만 결국 중국이 못 견딜걸? 푸틴 그때는 미국의 적이 소련 하나뿐이었지. 중국은 미국을 도와줬고. 근데 지금은 어때. 나 푸틴과 러시아도 이제 간단치 않지만, 중국은 더욱 그럴걸. 러시아가 중국과 분쟁을 해봐서 아는데, 중국 애들은 안보와 영토에 대해서는 완전 단호해. 중-소 분쟁, 중-인 전쟁, 중-월 전쟁 등을 봐. 건드리면 막 전쟁해버려. 당신네 나라 외교 현인이라는 헨리 키신저도 인정했잖아. 오바마 중국이 많이 크긴 했지. 그런데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 꼴일걸. 중국이 매년 7~8% 이상의 성장을 못하면 그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어. 이제 그런 성장은 한계에 왔어. 그리고 중국의 주변을 봐라. 온통 우리 동맹국들로 둘러싸여 있지. 미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왜 그리 무능한가 중국은 올해 구매력평가(PPP) 기준에서 실질 국내총생산이 19조달러로, 미국의 18조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푸틴 그래서 중국이 더욱 단호한 거야. 올해 초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고, 남중국해에서는 석유를 시추했다. 중국은 절박하기 때문에 더욱 거침이 없어. 근데 미국은 뭘 하고 있어? 동남아 동맹국들이 뭐라 그러지 않아? 내가 충고 하나 할까. 중국의 동맹국은 북한 하나라고 했지. 그런 중국이 유일한 동맹국을 포기할 거 같아? 오바마 너네 행정부가 중동이나 이란에 쏟는 외교력의 일부나마 북한 핵문제 해결에 행사했다면 동아시아 정세가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걸. 아시아태평양으로 돌아오겠다면서 본질적 문제 중의 하나인 북한 핵문제에는 왜 그렇게 무관심하냐? 그건 전략적 무관심이 아니라 무능한 거지. 오바마 러시아도 중국의 부상이 부담스럽고, 미국이 적당히 견제해주길 바라잖아. 그러려면 나와 미국에 여지를 줘야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이란 핵문제와 시리아 내전 해결 등에서 협력해줘. 나도 솔직히 인정할게. 우리 힘이 예전 같진 않아. 그렇다고 미국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냐.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동중국해나 서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걸 보고 싶겠냐? 100년 전 러일전쟁이나 청일전쟁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나길 바랄까? 푸틴 너네랑 영국 중심의 서방세력, 즉 해양세력은 유라시아 대륙 내부에서 패권국가를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폈어. 그게 바로 근대 이후 서방 지정학의 핵심 요점이지. 러시아의 재기나 중국의 부상을 놓고 벌써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를 해체하려는 비자유주의 세력의 동맹이라고 난리를 피우지. 당신네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이번에 이걸로 도배를 했더라. 포스트 냉전이 끝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해. 하지만 그 결론은 달라야 해. 우크라이나 사태는 두고 보자. 우리도 더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아. 우리가 그럴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를 잘 달래라.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포스트 냉전이 끝나니 그 상징인 러시아의 국경선도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길 바라. 오바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그만하자. 이것만은 명심해. 미국과 같은 급의 대우를 바라서는 안 돼.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고.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그걸 푸는 시작점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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