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잔 시위 주도 15명 ‘입막고’ 유죄판결
미국, 인권 거론하다 기지사용 위해 입닫아
미국, 인권 거론하다 기지사용 위해 입닫아
“그들의 가족들은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관과 관리들은 버스를 타고 몰려와 법정을 메웠다.”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동부 안디잔에서 일어난 유혈시위를 주도한 15명에 대한 재판이 19일(현지시각)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렸다. 그러나 영국 <인디펜던트>는 이들의 가족과 안디잔 주민들은 침묵을 강요받았다고 21일 전했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지원과 압박에 진실 규명의 희망을 걸었던 안디잔 주민들은 이마저도 버려야 할 상황이 됐다. 이 사태를 인권 문제로 거론하던 미국이 우즈베크 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즈베크 남부 카르시 하나바드 공군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우즈베크에 2300만달러를 주기로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0일 보도했다.
시위인가 테러인가=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사는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훈련받고, 러시아 이슬람 과격단체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주도됐다”고 주장했다. 증언대에 선 이들은 “우리에 갇혀 짐승처럼 두들겨맞고 고문당했다”며 한목소리로 시위대의 잔학상을 고발했다. 15명의 시위 주도자들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타슈켄트의 인권단체 관계자는 “이번 재판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시위를 테러공격으로 뒤집으려는 정부의 의도를 보여줄 뿐”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뉴욕의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날 보고서를 내어 “안디잔 사태는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로 이어진 시민혁명의 다음 도미노가 될 것을 우려한 우즈베크 정부의 발포로 시작된 대량학살극”이라고 밝혔다. 우즈베크 정부는 사망자를 187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인권단체들은 7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한다.
기지인가 진실인가=미국은 20일 카르시 하나바드 공군기지 사용료로 2300만달러를 우즈베크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드와인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미국이 대량학살을 간과한다는 오해를 줘선 안 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허사였다. 우즈베크 정부는 지난 7월 180일의 말미를 줄테니 모든 병력과 항공기, 장비를 이 기지에서 철수하라고 미국에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우즈베크 정부의 철수 요구에 그동안 여러 경로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정무차관의 우즈베크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원조를 중단하겠다는 신호를 흘렸다. 안디잔 사태를 인권 문제로 거론하기도 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부터 빌린 이 기지를 잃을 경우, 테러와 전쟁을 치르는 데 장애가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즈베크가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도 미국을 한 발 물러서게 한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크와 러시아는 1991년 옛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20일부터 우즈베크 산악지대에서 합동 군사훈련에 들어갔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이 훈련은 우즈베크 정부가 서방과 거리를 두겠다는 신호라고 <인디펜던트>는 분석했다.
유강문 기자, 외신 종합 m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