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개발과 태풍으로 강제 이주된 마을인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 타워빌의 봉제센터 ‘익팅’ 입구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들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옷을 사준 적 없는 노동자들은 봉제 기술을 배운 뒤 첫 작품으로 교복과 아동복을 만들었다. 이들은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사진 박유리 기자
[토요판] 르포 / 필리핀 타워빌의 어떤 실험
▶ 필리핀 관광지를 벗어나 빈곤의 맨살을 들여다보면 불편합니다. 인구 1%가 국토의 90%를 차지하고 15개 명문가가 경제력을 장악한 필리핀에선 하루 소득 2달러 미만의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54%를 차지합니다. 무절제한 욕망을 제어할 제도나 정치가 실종된 필리핀에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꽃피는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엔지오(NGO)인 ‘캠프’는 도심 개발로 쫓겨난 강제이주민 지역 불라칸주의 타워빌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세번 굶지 않고 매일 먹는 것(eat daily, eat 3 times a day), 자녀들이 학업을 마치는 것(make my children finish their study), 안전하게 지내는 것(be safe every time),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것(to get out of the poverty), 영원히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stay with family forever)….
당연하게 누리는 삶의 조건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이 된다. 지난 4월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 ‘타워빌’의 한 봉제센터 여성 노동자 80여명은 저마다의 절실한 꿈을 종이에 적었다. 태풍 등 자연재해,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으로 강제 이주된 주민 5만명이 사는 타워빌에는 봉제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일자리가 없었다. 학교, 병원, 치안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도심에서 각종 엔지오(NGO)가 주던 무료급식 등의 혜택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 마닐라로 떠난 남자들은 교통비 100페소(한화 약 2350원)를 아끼기 위해 주말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노숙을 했고 남겨진 여자와 아이들은 빈곤의 나날들을 견뎠다. 멀어진 거리처럼 깨지는 가정들이 늘어났다.
정부로부터 임대한 방 한 칸의 작은 집은 때로 독이 되었다. 이주민들이 25~30년간 한화 약 500만원을 갚으면 타워빌에서 내 집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슬레이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타워빌에는 엔지오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쓰레기와 쥐가 득실거리는 도시 외곽의 판자촌처럼 절대 빈곤의 이미지가 없었다. 후원자들이 지갑을 열기 쉽지 않은 곳에 엔지오들이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 수도 마닐라에서 북동쪽으로 40㎞ 떨어진 타워빌. 도심으로부터 치워진 빈민은 더 지독한 지방 빈민이 되었다. 3년 전까지 지역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감시하지 않는 공장
타워빌 주민 로즈 가브리엘(38)은 주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주중에 마닐라에서 일을 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할 게 없었다. 트라이시클(오토바이를 개조한 운송수단)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면 타워빌을 벗어나 대형 마트에 갈 수 있지만 텅 빈 지갑으로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1990년과 비교해 소비자물가는 4배 가까이 올랐지만 실질최저임금은 거의 제자리인 빈부격차의 나라, 필리핀에서 빈민으로 산다는 건 쉽게 움직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2011년 5월 타워빌에서 노동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이 세웠다는 봉제센터에 나가면 일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사실 봉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센터에 나가 보니 친구들도 사귀고 쉬는 시간에 수다도 떨었다.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국인이 봉제센터 주인인 줄 알고 그가 가끔 오면 눈치가 보였는데 한국인이 “나는 주인이 아니라 봉제센터의 친구”라고 했다. 한국에서 버려진 펼침막으로 가방도 만들고 기술을 배웠지만 공장에 주문이 많이 들어오진 않았다. 점심시간 1시간, 오전, 오후에 쉬는 시간도 주어졌다. 다른 공장처럼 누가 감시를 하지도 않았다.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다.
2013년에는 국립필리핀대학교(UP) 지역개발학과 학생들이 봉제센터에 찾아왔다. 1년간 틈틈이 센터에 찾아온 학생들은 가브리엘에게 봉제센터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했다. 대학생 3, 4명은 돌아가면서 노동자들과 워크숍을 열었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다.”
“그럼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상품을 기획, 생산하고 판매해 이득을 올리는 것이다.”
“그럼 사회적 기업에서 ‘사회적’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이익 가운데 일부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럼 사회적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신들이다.”
가브리엘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은 워크숍을 거치면서 봉제센터의 주인이 되어갔다. 선거를 통해 노동자 가운데 6명의 대표자들을 선발하고 일반 노동자들은 생산팀, 마케팅팀, 재정·인사팀으로 업무를 나눴다. 노동자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위원회를 열어 스스로 해결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월례회를 열어 재정 상황을 공개하고 센터를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를 나눴다. 처음엔 할 말이 없어 1시간 안에 끝나던 월례회가 이제는 한나절 동안 이어진다. “티셔츠를 빨았더니 라벨에 물이 빠지는데 개선하자.” “인근 마트에서 열리는 에어로빅 행사에 티셔츠를 입고 가서 함께 춤을 추며 센터를 홍보하자.”
여성들은 주어진 일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로 성장했다. 인근 학교 교복을 구한 뒤에 더 나은 샘플을 만들어 교장실을 직접 찾아가 계약을 성사시켰다. 맥도널드의 하청공장에 앞치마 등을 납품하다가 이윤이 거의 남지 않자 마닐라에 있는 맥도널드 필리핀 지사에 무작정 찾아갔다. 맥도널드를 설득해 재하청이 아닌, 직접 하청으로 앞치마를 납품하는 계약을 따냈다. 이들은 스스로 인센티브를 결정했다. 지난해 여름, 초과 이익이 발생하자 인센티브를 어떻게 나눌지 기준을 결정했다. 생산량, 출석률 등 네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점수화하고 인센티브를 나눴다. 봉제센터의 노동자들은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지역의 굶는 아이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에는 밥을 주러 봉제센터로 나갔다(현재는 한국 후원단체가 급식 재료비를 후원하게 됐다). 10월28일 타워빌 봉제센터 ‘익팅’(Igting)에서 가브리엘을 만났다. “살림하고 일하느라 내 아이 두명을 돌보는 시간이 부족해요. 하지만 지역의 다른 아이들을 돌볼 수 있잖아요. 예전에는 서로 얼굴도 알지 못했던 지역 아이들이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해요.”
지난달 25~28일 방문한 타워빌 봉제센터 익팅의 노동자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수다 떠는 사람, 점심시간에도 재봉틀 돌리는 사람, 업무 끝난 뒤에도 집처럼 센터를 드나드는 사람…. 봉제센터 입구에서 발라당 누워 장난을 치다가도 갑자기 으르렁대며 종잡을 수 없는 흰둥이 개 ‘보스’ 외에는 평화로웠다.
도시개발과 태풍으로 강제이주된
타워빌엔 진료소, 치안시설 부족
각종 엔지오도 한순간 사라지고
빈곤하고 무료한 나날 견디던 중
노동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한국인 친구가 세운 봉제센터
기술 배우고 사회적 기업론 토론
옷공장 사장이 된 노동자들이
직접 맥도널드 무작정 찾아가
계약 따내니 즐겁지 아니한가 밥을 나눠주는 구호를 넘어 가브리엘이 봉제센터 사장인 줄 착각했던 이는 한국의 국제개발 엔지오인 사단법인 캠프의 대표 이철용(51) 목사다. 2006년 필리핀에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빈곤 지역을 방문한 이 목사는 이곳 어린이들에게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보았다. 가난했던 이 목사는 어린 시절 미국 구호단체와 연계돼 머나먼 곳에 사는 대학생 찰스로부터 학비를 받아 공부했다. 받은 도움을 돌려주지 않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면에서 질문이 계속됐다. 그는 한국 생활을 접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필리핀 엔지오 조토(ZOTO)와 협력하며 마닐라의 대표 빈민지역인 톤도에 유치원과 구직자를 위한 컴퓨터 교실을 열었다. 빈민지역에서 교육열은 낮았고 결석률도 높았다. 이 목사는 단지 밥을 나눠주는 구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이 뭘까 고민했다. 그리고 엔지오들이 들어왔다 나가버린 타워빌로 활동지를 옮겼다. 한신대 지역발전센터, 국립필리핀대학교 지역개발학과 등과 협력해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0년 3월부터 타워빌 주민 6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등 13개월간 사회·경제적 현황을 분석하고 일자리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인 봉제센터, 베이커리 협동조합, 화덕 제작 협동조합, 진료소, 어린이·청소년 도서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세웠다. 상명대 의상학과 김경인 강사, 가방 브랜드 피노쿤스의 디자인실장 공재희,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이상훈 소장, 일본 사회적 경제 전문가인 강내영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경민 교수 등이 자비를 들여 필리핀을 드나들고 지역 개발을 도왔다. 주민 교육도 벌였다. 응급환자 이송 체계가 닿지 않는 타워빌 지역의 마을 리더들을 모아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피와 응급처치 요령을 설명했다. 아동 흡연과 폐암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금연 캠페인을 벌였다.
캠프가 단기간에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 사무실 인력을 최소화하고 엔지오를 현지화한 데 있다. 캠프에서 현장학습을 하고 있는 국립필리핀대학교 지역개발학과 학생 캐빈 델라쿠스(25)는 “일부 엔지오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고 싶은 것을 주기도 한다. 반면 캠프는 다르다. 노동자들이 생산부터 마케팅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했다. 직원 임금 등 엔지오 운영비는 캠프의 이사장 홍성욱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안양제일교회 교인들이 매주 1000원씩 후원한 돈으로 충당했다. 반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랑의열매, 함께일하는재단, 삼성꿈장학재단 등에서 받은 금액은 엔지오 운영비를 떼지 않고 지역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 전액 투자했다(한국국제협력단으로부터 400㎡ 면적의 봉제센터 설립 기금을 받았으나 캠프가 돈을 보태 600㎡의 센터를 세웠다). 한국국제협력단의 봉사단원 프로그램을 통해 파견받은 활동가들, 현지 채용된 필리핀 직원 등 20여명이 캠프의 식구다.
직접적 선교가 아닌, 사회적 지역 개발을 선교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국 교계 현실에서 일반 교회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삶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대형 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는 설교 끝나면 매주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지금은 매일매일 기적을 먹고 살아요. 어머니들이 봉제를 하고 빵을 만들면서 아이들을 굶기지 않게 됐어요. 한번은 지역에서 열린 케이팝 행사장에 후줄근한 옷을 입고 가려고 했더니 어머니들이 ‘그렇게 입고 다녀서 우리 제품을 알릴 수 있겠느냐’며 옷을 다려주셨어요. 위로의 말을 건네고 걱정해주실 때, 그때의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지요.”
한국보다 3~4배 비싼 필리핀 전기
필리핀의 전기료는 한국의 3~4배 수준이다. 빈민층은 밤에 전깃불을 켤 수 없다. 숯탄이나 나무로 불을 때다 보니 완전연소가 되지 않아 폐질환이 많다. 캠프의 요즘 또다른 고민은 저소득 계층을 위한 친환경적이면서도 저렴한 에너지다. 지난달 25~28일 한국과 일본, 필리핀의 에너지 관련 시민단체 등이 타워빌에 모여 ‘아시아청년에너지포럼’ 사전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각국이 처한 에너지 문제를 공유하며 신뢰를 쌓았다.
인도 여행 중에 개발도상국의 정전 문제를 깨닫고 회사 ‘루미르’를 설립한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4학년 휴학생들은 촛불의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여 점등시키는 엘이디(LED) 램프를 선보였다. 3년 전 원전 사고가 발생한 뒤 일본 후쿠시마에서 소규모 태양광 패널을 제작·보급하는 사회적 기업 ‘이와키 오텐토선’은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들은 캠프가 만든 화덕 협동조합을 방문해 좀더 원가를 낮춰 많은 주민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타워빌 지역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럼을 내년에 다시 열기로 했다.
그 시간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날아온 가방 디자이너 공재희, 무대의상 디자이너 김경인씨는 타워빌에서 마닐라 시내로 나가 시장 조사를 벌였다. 교복, 군복, 티셔츠 등을 학교나 단체 등에 납품하던 ‘익팅’을 자체 브랜드화하기 위해서다. 트라이시클에 지프니(지프차를 개조한 대중교통수단)를 세 번 갈아타고 먼지를 뒤집어쓴 이들은 시장과 백화점, 마트를 다니며 익팅의 마케팅 전략을 고민했다. 공재희씨는 “바나나, 대나무, 파인애플 섬유 같은 현지 소재를 활용해 이국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중저가 제품으로 브랜드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캠프의 내년 계획은 리더십을 노동자들에게 완전히 넘겨주고 봉제센터 ‘익팅’을 자립시키는 것이다. 봉제센터는 내년을 대비해 매출 수익을 적립하는 반면 인건비, 운영비는 캠프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캠프가 봉제센터의 자립을 돕는 역할은 내년에도 지속할 계획이다. 봉제센터 매출은 지난해 하반기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월급은 아직 다른 공장보다 낮은 하루 150페소다. 봉제센터 노동자 로즈 가브리엘은 이런 상황을 걱정하기보다 낙관으로 대답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도전처럼, 봉제센터 또한 다음 단계로 나가는 과정이에요. 자립을 해야 하니까 생산성을 높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센터보다 큰 공장에서 월급을 더 주기도 하지만, 거기 가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이미 봉제센터의 주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산호세델몬테/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타워빌엔 진료소, 치안시설 부족
각종 엔지오도 한순간 사라지고
빈곤하고 무료한 나날 견디던 중
노동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한국인 친구가 세운 봉제센터
기술 배우고 사회적 기업론 토론
옷공장 사장이 된 노동자들이
직접 맥도널드 무작정 찾아가
계약 따내니 즐겁지 아니한가 밥을 나눠주는 구호를 넘어 가브리엘이 봉제센터 사장인 줄 착각했던 이는 한국의 국제개발 엔지오인 사단법인 캠프의 대표 이철용(51) 목사다. 2006년 필리핀에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빈곤 지역을 방문한 이 목사는 이곳 어린이들에게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보았다. 가난했던 이 목사는 어린 시절 미국 구호단체와 연계돼 머나먼 곳에 사는 대학생 찰스로부터 학비를 받아 공부했다. 받은 도움을 돌려주지 않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면에서 질문이 계속됐다. 그는 한국 생활을 접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필리핀 엔지오 조토(ZOTO)와 협력하며 마닐라의 대표 빈민지역인 톤도에 유치원과 구직자를 위한 컴퓨터 교실을 열었다. 빈민지역에서 교육열은 낮았고 결석률도 높았다. 이 목사는 단지 밥을 나눠주는 구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이 뭘까 고민했다. 그리고 엔지오들이 들어왔다 나가버린 타워빌로 활동지를 옮겼다. 한신대 지역발전센터, 국립필리핀대학교 지역개발학과 등과 협력해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0년 3월부터 타워빌 주민 6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등 13개월간 사회·경제적 현황을 분석하고 일자리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인 봉제센터, 베이커리 협동조합, 화덕 제작 협동조합, 진료소, 어린이·청소년 도서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세웠다. 상명대 의상학과 김경인 강사, 가방 브랜드 피노쿤스의 디자인실장 공재희,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이상훈 소장, 일본 사회적 경제 전문가인 강내영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경민 교수 등이 자비를 들여 필리핀을 드나들고 지역 개발을 도왔다. 주민 교육도 벌였다. 응급환자 이송 체계가 닿지 않는 타워빌 지역의 마을 리더들을 모아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피와 응급처치 요령을 설명했다. 아동 흡연과 폐암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금연 캠페인을 벌였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엔지오(NGO)인 캠프의 건물에서 내려다본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의 타워빌. 5만명이 사는 지역에 일자리, 의료 시설, 응급구호 체제 등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해 삶의 질이 위협받는다. 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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