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와 영주권, 사가세요~.
중국과 러시아·중동의 신흥 부자들이 투자이민을 뛰어넘어 여러 나라의 ‘골든 비자’를 사모으기 시작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제2, 제3의 여권·비자를 얻기 위해 한 해 20억달러씩 쓰고 있다고 추정한다. 여권이나 영주권을 살 수 있는 ‘골든 비자’는 외국인 투자자 유치 정책으로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전통적 의미의 ‘투자이민’이었다. 부동산 등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기로 하고 까다로운 면접을 거쳐도 해당 국가가 언제 승인해줄지 기약이 없어 기다려야 헸다. 그런데 요즘은 이들 국가들이 빠른 비자 발급을 약속하며 발급 가격을 올리며 아예 발벗고 장사에 나섰다.
호주는 최근 ‘골든 비자’보다 한 끗 위의 ‘프리미엄 투자자 비자’를 선보였다. 기존 ‘중요 투자자 비자’는 500만호주달러(약 45억원)를 투자받고 4년 뒤 영주권을 내줬다. 새 프로그램은 기존의 3배 가격인 1500만호주달러에 영주권을 발급해주는데, 발급기간을 1년으로 대폭 단축했다. 영국도 최근 ‘특급’ 시민권 발급 제도를 도입했다. 200만파운드에 5년 뒤 거주권을 내주던 것을 500만파운드를 내면 3년 안에, 1000만파운드(17억원)를 내면 2년 안에 영주권을 주기로 했다.
부동산 투자 등의 요건도 없이 돈만 받고 시민권을 팔아 장사하는 나라도 등장했다. 올해 1월부터 65만유로(약 8억7000만원)에 시민권을 내주기 시작한 몰타는 거주 요건도 붙이지 않았다. 몰타는 솅겐조약에 따라 ‘국경 개방’에 동참한 유럽 26개국 중 하나다. 몰타 시민권을 갖게 되면 이들 나라에서 자유롭게 거주 또는 여행할 권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곧 ‘시민권 매매’ 논란에 휩싸여 외국인 부자들에게 부동산과 정부채에 대한 투자를 요구했다. 경제 여건이 나쁜 일부 유럽 국가들은 더 낮은 값에 시민권을 팔기 시작했다. 키프로스는 30만유로, 그리스는 25만유로의 ‘골든 비자’ 제도를 운영한다.
이들 나라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시민권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난달까지 50만유로를 부동산 등에 투자해 포르투갈의 ‘골든 비자’를 받은 1775명 가운데 81%인 1438명이 중국인이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영업 중인 중국 ‘골든 비자’ 중계업체들은 비자를 받는 중국인 5명 가운데 1명 정도만 1년에 7일 이상을 포르투갈에서 보낸다고 추산했다. 이는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체류기간이다. 비자 중계업체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에서 벌어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을 들듯 ‘골든 비자’를 사고 있다고 분석한다.
포르투갈 사회당 출신의 아나 고메스 유럽의회 의원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려고 목숨을 거는 가난한 난민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자라고 다른 취급을 하는 게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인가”라고 말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지난달 이민국 관료 11명이 부패 혐의를 받고 체포됐으며, 이 사건으로 내무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시민권 장사는 뇌물 등 부패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