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7월 이라크 북부에 있는 고대 아시리아 왕국의 수도인 님루드 유적지에서 파괴된 라마수를 복원하는 모습(왼쪽 사진)과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라마수의 온전한 모습(오른쪽)이다. 이슬람국가는 최근 님루드 유적지를 불도저 등으로 파괴했다고 이라크 정부가 밝혔다. AP 연합뉴스
“한낮에 불도저로 궁전 허물어”
1주일전엔 모술 박물관 훼손도
유네스코 “유적 파괴 전쟁범죄”
1주일전엔 모술 박물관 훼손도
유네스코 “유적 파괴 전쟁범죄”
인류 문명의 요람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장악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이번에는 ‘문화유산 파괴 전쟁’에 나섰다.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모술박물관의 고대 유물을 파괴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지 일주일 만에 고대 아시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님루드의 유적을 중장비 등을 동원해 파괴했다고 이라크 관광문화재부가 5일(현지시각)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을 통해 밝혔다. 현지 문화재 담당자들과 연락을 취한 이라크 관리는 “이슬람국가 세력들이 한낮에 불도저를 몰고 와 고대 궁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이 관리는 정확한 파괴 규모 등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님루드의 아슈르나시르팔 2세 궁전의 문에 세워져 있던 라마수 조각 등이 파괴된 것은 확인했다고 말했다. 관광문화재부는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은 전세계와 인류의 감정을 거스르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슬람국가가 지난해 6월부터 점령하고 있는 이라크 제2도시 모술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20㎞ 지점에 있는 님루드는 기원전 13세기에 아시리아의 샬마네세르 1세 왕이 수도로 세운 고대 도시다. 수염 달린 인간의 얼굴에 날개 달린 황소 몸을 한 거대 석상 라마수가 대표적인 유적인데, 라마수 석상의 일부는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세력들에 약탈돼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3000여년 전의 수많은 유적과 석상, 유물들이 님루드에 남아 있다. 아시리아는 바빌론 제국과 함께 현재 이라크 지역에서 번성했던 인류 역사 초기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한다.
지난달 26일에도 이슬람국가는 모술박물관의 유적들을 대형 망치와 드릴 등으로 파괴하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산산이 부서진 고대 아시리아 석상들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동영상 맨 마지막에는 고대 니네베 유적 입구에 있는 네르갈문을 파괴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슬람국가가 점령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에서 대대적으로 유물 파괴와 약탈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이슬람국가 점령지 안에 있는 대표적인 유적지는 님루드, 니네베, 아슈르, 코르사바드, 하트라 등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리스-로마 시대의 도시 유적들이다. <알자지라>는 이라크내 1만2000여곳의 고고학 유적지 중 1800곳이 이슬람국가 점령지 안에 있다고 전했다. 이슬람국가는 이슬람 교리를 극단적으로 해석해 이슬람 시기 이전 고대 유적의 인물·동물상 등을 우상 숭배로 배척하며, 이슬람교의 다른 종파인 시아파 관련 사원 등도 훼손했다. 이슬람국가는 유적 파괴로 국제사회의 시선을 끄는 선전전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의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은 6일 성명을 발표해 “님루드 유적 파괴를 가장 강하게 규탄한다”며 “문화유적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떤 정치·종교적 목적으로도 인류 문화유산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형사재판소(ICC)와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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