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러시아 군 훈련장에서 공개된 S-300 방공 미사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S-300의 이란 수출 금지령을 해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EPA 연합뉴스
미 의회 ‘더 강경·’ 이란 ‘뻣뻣’ 가능성
케리 국무, 러 외무장관에 ‘우려’ 표명
“핵협상 이행 계획 위험하게 할 것”
일부 ‘대러시아 제재 탈피 시도’ 분석
케리 국무, 러 외무장관에 ‘우려’ 표명
“핵협상 이행 계획 위험하게 할 것”
일부 ‘대러시아 제재 탈피 시도’ 분석
러시아가 대이란 방공 미사일 금수령을 전격 해제했다. 아직 갈 길이 먼 이란 핵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첨단 방공 미사일 체계인 S-300의 이란 수출 금지령을 해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크레믈이 밝혔다. S-300은 탄도 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 저고도 전투기를 탐지·파괴하는 무기 체계다. 러시아는 2007년 이란과 8억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나,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이 유엔의 이란 제재에 호응해 이에 대한 금수령을 내린 바 있다.
러시아의 이번 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란 핵협상의 진전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첫째는 가뜩이나 이 협상에 부정적인 미 의회를 더 강경하게 만들 수 있다. 러시아가 이란 핵협상을 기회로 이란에 무기 장사를 하고, 이란은 이 무기로 지역 맹주의 자리를 굳힐 수 있게 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커크 상원의원(공화)은 “핵협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푸틴 대통령이 대이란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유엔 무기금수 조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미 상원 외교위는 이르면 14일 의회에 이란 핵 합의안에 대한 승인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둘째는 주요 6개국(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의 대이란 협상 지렛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란은 핵협상 실패시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번 방공 미사일 구매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협상에서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공군 장성 출신인 데이비드 데프툴라는 <뉴욕 타임스>에 “(러시아의 결정은) 공습과 관련된 군사적 선택지와 계획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번 조처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3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전화해 이번 결정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그는 정례브리핑에서 “러시아의 이런 행보는 이란 핵협상의 최종 결과에 따라 대이란 제재를 해제한다는 (주요국들의) 계획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마리 하프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이것이 협상장에서 주요 6개국의 단합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의 이번 결정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괴롭히면서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에 구멍을 내려는 시도로도 여겨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국가들의 제재 속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무역 파트너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러시아 언론들은 이번 미사일 금수령 해제와 함께 이란과 물물교환 방식의 무역거래 협상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이란에 밀을 비롯한 상품을 수출하는 대신에 이란은 러시아에 원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게오르기 미르스키 연구원은 <뉴욕 타임스>에 “러시아의 이번 결정은 러시아가 이란의 동맹은 아니지만 정말로 충실한 파트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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