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유명한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47)를 유엔의 첫 지뢰 제거 특사로 임명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지뢰 제거 특사 임명식에서 “크레이그는 <007> 영화에서 살인면허를 갖고 있다”며 “오늘 우리는 그에게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면허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또 반 총장은 “세계 다른 영화팬처럼 나도 크레이그가 몇초밖에 남지 않은 위기 상황에서 시한폭탄을 멈추게 하는 장면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며 “이제 크레이그가 스타로서의 명성을 지뢰 제거라는 고귀한 일에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니 더욱 흥분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3년 동안 특사로 활동할 크레이그는 ‘세계에서 지뢰가 많이 묻혀 있으며 불발탄이 많이 남아 있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캄보디아에서 영화 촬영을 한 경험이 계기가 되어 지뢰 제거 특사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고 유엔은 전했다. 크레이그는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캄보디아에) 터지지 않고 남아 있는 폭탄들이 옛 분쟁지역에 그대로 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한반도 역시 지뢰 제거 작업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꼽힌다. 국제사회는 ‘모든 대인지뢰의 생산·사용·비축·이동을 금지하고 매설된 지뢰를 제거한다’는 내용의 오타와 협약을 1999년 발효했고 162개 나라가 가입했지만,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중국·이란 등은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 9월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한반도는 예외”라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무장지대(DMZ)에만 108만3000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뢰 매설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