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 쫓던 스페인 배, 해역에
영 “통지 않고 진입…주권 침해”
스페인 관료 “그 해역, 우리 바다”
영 “통지 않고 진입…주권 침해”
스페인 관료 “그 해역, 우리 바다”
유럽 내에 있는 유일한 영국 ‘식민지’ 지브롤터에서 옛 주인 스페인과 영국이 한판 붙었다. 마약범을 쫓던 스페인 세관의 배와 헬기가 통보없이 지브롤터 해역에 진입하자, 두 나라간 300여년 묵은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영국 외무행정부 휴고 스와이어 장관은 9일 “스페인 정부 선박들이 지브롤터 당국자들에게 통지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영국령인 지브롤터 해역을 침범했다”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영국 정부는 스페인 당국이 범죄 용의자가 탄 선박을 추적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멋대로 자국령에 진입한 것은 “국제법상 불법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스와이어 장관은 스페인 당국의 지브롤터 해역 진입은 “영국에 대한 분명한 주권 침해”라며 “스페인 정부에 긴급하게 문제 제기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지 일간 <지브롤터 크로니클>은 스페인에서 마약과 돈세탁을 단속하는 세관감시서비스(SVA)의 선박과 헬리콥터가 9일 아침 밀수업자의 스피드보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샌디베이 해안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애초 지브롤터 해협에서 시작된 추격전은 밀수업자들이 샌디베이 쪽으로 방향을 틀어 암초에 부딪히면서 마무리됐다. 밀수업자들의 배를 견인해가려던 스페인 당국은 출동한 지브롤터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이와 별개로 같은 날 스페인 당국은 또다른 마약 밀수 용의자들을 쫓아 지브롤터 해역에 진입했으며, 전날에는 스페인 유람선이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비앙 피카르도 지브롤터자치정부 수석 장관은 이틀에 걸쳐 이어진 스페인 쪽의 ‘침범’이 주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허세”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스페인 정부가 이번 사건을 “분쟁”으로 규정하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익명의 외무부 당국자들이 “별 일 아니다. 스페인은 그 해역을 스페인 바다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년 전에도 양국은 지브롤터 앞바다에 진입한 스페인 선박을 놓고 외교적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스페인은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영국에 빼앗긴 지브롤터를 돌려 달라고 요구하며 두 나라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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