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전산망 통해
뉴욕 연준에 예치금 계좌이체 요청
송금요청서 영어철자 잘못 적어
‘돈세탁 경고’에 추가 이체는 실패
사건 한달 지나도 범인 오리무중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장은 사퇴
급기야 연준과 책임공방으로 번져
뉴욕 연준에 예치금 계좌이체 요청
송금요청서 영어철자 잘못 적어
‘돈세탁 경고’에 추가 이체는 실패
사건 한달 지나도 범인 오리무중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장은 사퇴
급기야 연준과 책임공방으로 번져
“군사 공격을 받은 것만 같았다. 지진이 일어난 것 같기도 했다. 어디서, 누가 공격을 했는지 즉시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아티우르 라흐만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장은 15일 <데일리스타> 인터뷰에서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예치한 돈 약 8100만달러(약 966억원)를 사이버 절도당한 사건에 관해 말하면서다.
라흐만은 이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은행장에서 물러났다. 부행장 2명도 자리에서 쫓겨났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고 역할을 하며 ‘금융의 심장부’로 불리는 뉴욕 연준 보안망을 뚫는 데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 같은 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사건 발생 한달이 넘은 지금도 잡히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역대 사이버 금융절도 사건 가운데 최대 규모 중 하나다.
사건은 지난달 5일 일어났다. 이날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은 은행간 거래 시스템인 스위프트(국제은행간 금융통신 중개회사·SWIFT) 전산망을 통해 뉴욕 연준에 예치금 약 10억달러를 필리핀과 스리랑카 은행 등의 계좌로 이체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계좌이체 요청만 35건에 달했다. 뉴욕 연준은 이중 5건의 계좌 이체 요청을 수락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을 나타내는 은행코드가 제대로 입력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날은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는 휴일인 금요일로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뉴욕 연준에서 8100만달러가 필리핀 은행의 개인 계좌 4곳으로 송금됐고, 이 계좌의 돈은 다시 중국계 필리핀인 사업가 계좌로 이체됐다. 이후 8100만달러는 필리핀 화폐인 페소로 교환돼서 필리핀 카지노로 흘러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페소는 카지노 칩으로 교환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필리핀 법률상 카지노는 돈세탁 수사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범인들은 이런 법의 구멍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결국, 필리핀 정부가 돈세탁에 쓰인 계좌를 동결해서 방글라데시에 돌려준 돈은 6만8000달러(약 8100만원)에 불과했다.
범인들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의 뉴욕 연준 예치금 2000만달러(약 238억원)를 스리랑카 비정부기구(NGO) 명의로 빼돌리는데도 성공할 뻔했지만, 철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실패했다. 송금요청서에 재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Foundation’을 ‘Fandation’이라고 잘못 썼다. 스리랑카 은행은 철자도 이상한데다가 송금 요청이 비정상적으로 많다고 생각해서, 예금주인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에 이 사실을 알리고 거래를 중지시켰다. 범인들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예치금인 8억5000만달러(약 1조원)를 추가로 뉴욕 연준에서 빼내려고도 했으나, 수상한 낌새를 느낀 뉴욕 연준이 돈세탁 경고를 내리면서 실패했다.
당황한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은 도난 사실을 한달여간 숨겼다. 필리핀 언론이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해킹으로 거액을 도둑맞았고 필리핀으로 이 돈이 흘러들었다”고 보도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은 지난주에야 사실을 인정했다. 방글라데시 재무장관은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분노했다.
사건은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와 뉴욕 연준의 책임 공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재무장관은 뉴욕 연준이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걸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뉴욕 연준은 성명에서 “국제 금융 시스템에 맞는 거래를 했다”며, 자신들의 시스템이 해킹당한 증거는 없으니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극빈 인구 수 기준으로 아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다음으로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의 외환보유액은 28억달러인데, 대부분을 미 연준 은행들과 영국중앙은행에 맡기고 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뉴욕 연방준비은행 사이버 금융 도난 사건 개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