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 방일 기정사실화 보도에
미 ‘원폭 사죄’로 비칠까 주춤하자
외무상, 미 배려 발언
미 ‘원폭 사죄’로 비칠까 주춤하자
외무상, 미 배려 발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원폭 투하)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일본 정부와 언론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기시다 외무상은 지난 23일 홋카이도에서 열린 강연에서 “‘인류의 비극을 두 번 일으켜서는 안 된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하도록 히로시마를 방문하면 좋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사죄 사이에 선을 그었다. 미국 쪽으로부터 “확정된 것은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일본이 나서서 미국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 11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히로시마 방문 직후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가능성을 언급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 방침을 굳히고 일본 정부와 최종 조정에 들어갔다”고 전했고, <산케이신문>은 23일 “(5월)27일 방문 유력”이라며 날짜를 특정했다. ‘최종 조정에 돌입했다’는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일본 언론이 즐겨 쓰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일본 언론들이 연이어 ‘설익은 보도’를 쏟아내며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정작 오바마 대통령은 확답을 피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영국 런던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면서, <닛케이신문>의 보도를 확인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아시아를 방문할 때까지 아시아에 대한 질문은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닛케이>는 이날 미 고위관리들의 발언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달 26~27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1945년 원폭 투하 이후 처음으로 피폭지를 방문하는 미국 현직 대통령이 된다. 전세계에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어젠다인 ‘핵 없는 세상’의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미 공화당과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전정윤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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