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4일 샹그릴라 호텔에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방관(가운데),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제공
▶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오는 10월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구체적인 사드 배치 계획을 밝힐 것이라는 이야기도 덩달아 힘을 얻는 분위기다. 사드 배치가 몰고 올 엄청난 파장에도 불구하고, 사드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보의 혼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형편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가 점차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해 공식연설을 통해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의 안보와 국익 관점에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의 공식 발언을 계기로 “오는 10월 워싱턴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사드 배치 계획을) 발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거나 “2017년 안에 대구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도 뒤따르고 있다. 이런 사실은 최근 사드 한국 배치를 둘러싸고 빚어진 한-미 간 ‘엇박자’가 실상은 배치 지역과 시기, 합의 발표 시점에 관한 실무 차원의 입장 차이일 뿐, 사드의 한국 배치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한국 내 사드 배치가 가져올 파장은 실로 크다. 한·미·일 미사일방어망(엠디·MD)과 군사동맹이 구축돼 미-중 간 전략 안정이 무너지고 동북아에 신냉전체제가 들어서게 되며, 이 지역의 평화가 항구적으로 위협받고 한반도 평화통일도 더욱 요원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국 시민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사드의 한국 배치가 몰고 올 파장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현실적으로 사드가 배치될 가능성이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데는 일부 진보적 성향의 군사전문가들의 잘못된 주장도 한몫했다 할 만하다.
미국 겨냥한 중국 ICBM 무력화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군사전략적 배경은 동북아와 세계 엠디, 동북아와 세계 군사동맹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유럽(2011~20년), 중동(2012년~), 아·태지역(2012년~) 엠디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 세 지역 엠디를 연결해 세계 엠디를 구축하려고 한다.
지역 엠디는 지역 군사동맹 구축의 디딤돌이다. 미 의회 보고서는 “통합 탄도미사일방위(BMD) 체계가 좀더 제도화된 지역 집단방위(동맹)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Ballistic Missile Defence in the Asia-Pacific Region’, 2015년 4월3일) 나아가 미국은 이들 지역동맹을 하나로 묶어 세계 동맹을 구축하고자 한다. 나토와 아·태지역 군사동맹을 결합시켜 세계 군사동맹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동북아 엠디 구축을 위한 핵심 고리다. 사드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2000㎞를 훨씬 웃도는 5000㎞에 이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2년 5월30일자에서 이스라엘 배치 사드 레이더의 탐지거리를 4600㎞로 보도한 바 있다. 더욱이 사드 레이더는 식별 능력이 뛰어나 탄도미사일의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를 구별할 수 있다.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엠디 체계가 극복하지 못한 최대 취약점 중 하나였다.
한민구 “(사드 배치) 의지 있다”
아시아안보회의에서 공식연설
지역 군사동맹 구축의 디딤돌
미 본토 겨냥한 중국 ICBM 무력화
미·중 간 핵 대결 균형추 무너져
“동북아 세력균형 와해 안될 것,
MD 예산 전액 삭감” 등 숱한 오해
미국 포기하기 어려운 핵심전략
2017년까지 7개 포대 도입 계획
MD 참여 우리가 얻을 혜택 없어
이에 미국은 수년 전부터 사드 레이더의 한국 배치를 추진해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백령도에 사드 레이더 배치를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전진 배치된 사드 레이더는 일본 샤리키(2006년)와 교가미사키(2014년)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보다 한 단계 높은 탐지 능력을 동북아 엠디 체계에 제공해준다.
현재 미-중 간 전략 지형은 미국 우위의 전략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드의 한국 배치로 동북아 엠디가 구축되면 현재의 미-중 간 전략안정은 미국 절대 우위의 전략 지형으로 바뀐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가 미국을 겨냥한 중국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레이더는 미국을 겨냥한 중국 아이시비엠을 ‘부스트 단계’에서부터 탐지해 미국 이지스 비엠디(BMD)나 본토 배치 지비아이(GBI·지상배치 요격미사일)가 중국 아이시비엠을 요격할 수 있는 횟수와 확률을 높여준다.
미국과학자연맹은 미국 엠디 체계가 지비아이(2017년까지 44기 배치 예정)를 비롯해 이른바 SM-3 블록 ⅡA(이지스 요격미사일, 2017년 실전 배치 예정), ⅡB(개발 중)를 500여기만 갖춘다면, 10%의 요격률을 가정할 경우 50여기에 불과한 중국 아이시비엠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Upsetting the Reset’, 2011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1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중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한국 배치가) 지역의 전략균형을 훼손한다”며 사드 한국 배치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적기지 공격론’ 뒷받침할 수도
동북아 지역 안정도 흔들릴 수 있다. 중국은 해군력 강화로 일본-필리핀-브루나이로 이어지는 소위 1도련선과 일본-괌-파푸아뉴기니로 이어지는 2도련선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일 해·공군력의 1, 2도련선 내 접근과 작전에 제약을 가하려고 한다.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다는 중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DF-21D와 DF-26D는 중국의 작전 수행을 지원할 무기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와 동북아 엠디가 지역 미군기지와 항공모함을 겨냥한 중국의 탄도미사일을 조기 탐지해 요격할 수 있다면 해·공군력에서 열세인 중국의 대미 억제력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1, 2도련선 내에서 이제껏 누려온 해상 패권을 유지할 수 있으며, 미-중 간 전략 지형도 미국 우위로 고착될 게 뻔하다.
일본의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의 첫번째 과제로 북·중 탄도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와 함정 방호를 들고 있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와 동북아 엠디는 자위대가 미 본토와 함정을 방호하기 위한 집단자위권 행사를 좀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의 첫번째 대상 지역은 한반도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은 안보법에 따라 한반도에서 발생한 평·전시 무력 충돌을 일본의 이른바 ‘존립위기사태’로 간주해 집단자위권 행사에 나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위대는 북한이 대일 무력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판단되면 대북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 이른바 ‘적기지 공격론’이다.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는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 시 살아남아 일본을 공격하는 노동미사일을 조기 탐지해 일본의 요격 기회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일본으로선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될 만하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 앞에서 한국 내 사드 배치 등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드의 한국 배치가 몰고 올 엄청난 파장에도 불구하고, 그간 우리 사회엔 사드에 관한 정보 면에서 혼선이 거듭된 게 사실이다. 군사안보 분야의 속성상 정확한 실체에 접근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점 이외에도,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오해를 불러온 측면도 있다. “중국의 아이시비엠은 내륙 깊숙이 있어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 밖에 있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주장도 한 예다. 하지만 사드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2000~5000㎞로, 최소 탐지거리 2000㎞를 적용하더라도 중국 동북부의 아이시비엠 기지는 대부분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 안에 있다.
이뿐이 아니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은 과거 여러 차례 “한국에 사드 요격체계가 하나 더 배치된다고 해서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크게 와해될 상황은 아니”(<한겨레> 2016년 2월26일치)라거나, “(사드를 한국에 배치한다면) 텍사스에 있는 거 하난데 미국이 자기 본토 방어 포기하고 자기네 미사일을 빼준다? 그건 상상하기 어렵다”(‘김어준의 파파이스’, 2016년 2월12일)는 등 사드 한국 배치 가능성을 단지 ‘총선용’으로 단정하기도 했다. 특히 김 의원은 지난해 “미국이 사드를 배치할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다. 미 엠디 예산이 올해 전액 삭감되어 있는 실정”(‘노컷뉴스’, 2015년 10월31일)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
“한국이 어떤 입장 설지 묻는 시험지”
미국의 2016 회계연도 엠디 예산은 81억달러로, 2015 회계연도(78억달러)보다 3억달러가 늘었다.(미사일방어국, ‘Historical Funding for MDA FY85-16’) 이 중 사드 예산은 4억6000만달러다.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30년 동안 미국 엠디 예산이 전액 삭감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더군다나 미국은 현재 사드를 5개 포대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세번째, 네번째 포대는 훈련이 끝나 실전 배치할 수 있고, 다섯번째 포대가 훈련 중이다. 2017년까지 모두 7개 포대를 도입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구상으로, 미국은 1개 포대를 아랍에미리트에 배치할 계획이다.(제임스 시링 미사일방어국 국장 의회 청문회 증언, 2016년 4월13일) 실전 배치 준비가 끝난 사드 포대 중 1개가 한국에 배치될 수 있는 것이다. 사드가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체계인 터라 속도가 마하 9인 사드로는 속도가 마하 20 이상인 아이시비엠을 요격할 수 없다는 점도 흔히 오해되는 대목이다. 미 본토에 배치된 사드로 미국을 겨냥한 아이시비엠을 요격할 수 없다는 뜻이다.(미 미사일방어국 평문 자료)
사드 한국 배치와 한국의 동북아 엠디 참여로 한국이 얻을 것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유사시 일본이 제공할 북한 탄도미사일 정보는 한반도의 짧은 작전 종심 탓에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데 무용지물에 가깝다. 앞에서 언급한 미 의회 보고서(2015년 4월3일)조차 한국이 동북아 엠디 참여로 받을 혜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얻는 건 없을지언정 사드의 한국 배치로 우리가 떠안아야 할 부담은 분명하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에 설 것인지를 묻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미 의회 보고서에 쓰인 문구는 섬뜩하다. 대결과 전쟁 위험을 높이는 길을 배척하고 지역 국가들이 평화 공존하는 상생의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