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이탈리아 중부 지진 희생자들을 이탈리아식 요리로 묘사한 만평을 선보여 이탈리아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
2일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샤를리 엡도가 8월31일자로 발행된 최근호 주간지에 ‘이탈리아식 지진’이라는 제목의 만평을 실었다고 보도했다. 만평은 지진 희생자들을 세 종류로 나눠 그렸다. 첫번째 칸엔 머리와 팔에 피묻은 붕대를 하고 있는 속옷 차림의 키가 큰 남성을 그리고 ‘토마토 소스 펜네(길쭉한 원통 모양의 파스타)’라고 썼다. 두번째 칸엔 지진 잔해에 맞은 듯 멍으로 얼굴이 붓고 먼지가 뒤덮인 여성을 그리고 ‘그라티나테(치즈그라탕) 펜네’ 라고 썼다. 마지막으로는 건물에 완전히 깔린 시신의 피묻은 발을 그리고는 ‘라자냐’ (얇게 썬 밀가루 반죽을 토마토 소스 등에 버무려 겹겹이 쌓아 만든 요리)라고 썼다. 이 만평은 주간지의 제일 뒷면 커버로 실렸다. 제일 뒷면은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커버’라는 표제의 만평들이 실려 있는데, 이 만평이 커버 후보작에 올랐다가 탈락한 만평 중 하나라는 얘기다. 샤를리 엡도는 또 여기에 또다른 ‘농담’도 덧붙였다. “외로운 늑대 : 이탈리아에서 약 300명이 사망. 지진이 닥치기 전에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위대하다는 뜻의 아랍어)라는 소리가 들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음.”
샤를리 엡도는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로, 정치와 종교까지 성역을 가리지 않는 풍자 만평으로 이름이 높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그렸다가, 지난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사무실을 찾아가 총기를 난사해 소속 만평가 등 10여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샤를리 엡도의 만평이 표현의 자유인지, 소수자에 대한 조롱인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나는 샤를리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일 가제티노>는 이번 만평을 두고 “이탈리아 사회에서 분노가 솟구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평이 그려질 당시쯤에도) 시신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었다. 약 300명이 사망하고 마을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내렸는데도, 펜네와 라자냐를 들먹였다”는 것이다.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인 아마트리체 시의 시장 세르지오 피로치는 지역 뉴스에 출연해 “재난이나 사망자를 풍자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런 풍자가 프랑스 전체의 심리를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트위터 등 SNS에서도 샤를리 엡도를 향한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이상 풍자가 아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순수한 모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관 쪽에서는 부랴부랴 성명을 내고 “샤를리 엡도의 만평은 프랑스의 입장과 무관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샤를리 엡도 쪽은 비난이 커지자, 오히려 반격하는 듯한 내용의 만평을 추가로 페이스북 계정에 올리면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만평에서는 지진 잔해에 반쯤 묻힌 사람이 외치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집을 지은 것은 샤를리 엡도가 아니라 마피아이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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