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국정 농단, 부정부패, 국고 유용….
한국 외에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대통령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로 대통령들이 국민들로부터 거센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브라질 야당인 사회주의자유당(PSOL)은 28일 하원에서 “미셰우 테메르(76) 대통령이 공직을 지내면서 사익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밝히며,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테메르 대통령은 마르셀루 칼레루 전 문화부 장관에게 압력을 가해, 브라질 동부 사우바도르시의 건축물 고도 제한을 완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역사문화 유적지구로 지정돼 있어 10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이곳에 고급 아파트 건축을 위해 30층 건물 건설 허가를 내주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테메르 대통령의 최측근인 제데우 비에이라 리마 정무장관이 이 아파트 건축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대통령이 측근의 이익을 위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테메르 대통령은 이를 ‘규제 완화’라고 주장하며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하는 등 자신이 잘못한 게 전혀 없다는 식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칼레루 문화부 장관은 지난 18일 사임하면서 “대통령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브라질 검찰은 칼레루 전 장관에게 테메르 대통령과의 통화 녹음파일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 파일에는 직접 규제 완화를 지시하는 대통령의 목소리가 녹음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수사에서 핵심 증거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스캔들에 연루된 대통령 측근인 리마 정무장관도 이번 논란에 책임을 지겠다며 지난 25일 사임했다. 이로 인해 테메르 정부가 들어선 지난 6개월간 부패 의혹으로 사임한 장관은 다른 사건으로 인한 2명을 포함해 모두 4명이 됐다.
야당이 발의한 대통령 탄핵안은 여당이 다수인 국회 의석을 고려하면, 현재로선 통과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지난 5월 지우마 호세프 전임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섰고, 이후 정치인의 부패 청산을 외치며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테메르 대통령 자신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국민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향후 20년간 예산안 동결과 연금 삭감을 뼈대로 한 긴축안에 대해 여론 반발이 커지고 있는 것도 테메르 정권에는 부담이다. 카를루스 멜루 정치분석가는 “인기 없는 개혁안들을 밀어붙이며 테메르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데다, 추가로 부패 혐의가 드러나면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27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 자리한 대통령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브라질리아/AFP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컵 주마(74) 대통령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3일 남아공 국민권익보호원이 공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인도계 재벌 기업인 굽타 일가의 3형제들이 주마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고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이를 대가로 국가산업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주마 대통령은 은란라 네네 재무부 장관 해임 여부 등 주요 공직 인사를 사전에 굽타 형제와 상의했고, 각료 인선에 이들의 조언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굽타 일가는 남아공,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광산업·군수산업·철도산업 등 주요 산업을 주무르고 있는 재벌 기업이다.
비선 실세 의혹이 담긴 보고서가 공개되자, 지난 10일 야당은 의회에 주마 대통령 불신임안을 상정했다. 이는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그러나 노동부 장관 등 각료 3명이 주마 대통령 불신임을 주장하고 나섰고, 아프리카민족회의 전국위원회에서도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불신임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등 내각과 여당 내부에서부터 주마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남아공의 수도인 프리토리아에서 수천명의 시민이 시위에 나서 주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도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 남아공의 ‘비선 실세’ 의혹과 지금까지 숨겨졌던 주마 대통령의 부패·비리 및 국정농단 사실이 추가로 더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