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대변인 “히틀러도 화학무기 안 써” 말실수에
히틀러가 2차대전 전장에 쓰지 않은 이유 새삼 관심
1차대전 때 최초 사용하고도 ‘자제’ 배경에 여러 추측
히틀러가 2차대전 전장에 쓰지 않은 이유 새삼 관심
1차대전 때 최초 사용하고도 ‘자제’ 배경에 여러 추측
1차대전 당시의 히틀러.
1차대전 때 연합군 독가스에 부상
화학무기의 위험성 익히 알아서? <워싱턴포스트> 12일치는 흥미로운 가설을 소개했다. 독가스의 고통을 아는 히틀러의 개인적 경험이 그것이다. 사병으로 1차대전에 참전한 그는 1918년 10월 독가스 공격을 받는다. 순간적으로 시력을 상실한 그와 전우들은 서로 엉겨서 탈출한다. 히틀러는 벨기에 플랑드르의 군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독일의 항복 소식을 접한다. 그는 <나의 투쟁>에 당시의 고통을 묘사해놨다. “매 15분마다 고통이 점점 커졌다. 아침 7시쯤에는 눈이 타들어갔다. … 몇 시간이 지나자 내 눈은 빨갛게 타는 석탄 같았다. 그러고는 앞이 깜깜해졌다.” 이렇게 화학무기의 무서움을 체험한 히틀러가 함부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 가설의 내용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인도적’ 차원에서 절제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전쟁 말기에 새파란 학생들한테까지 총을 들려 결사적으로 베를린 방어전에 나설 정도로 절망적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2차대전 당시 독일 기갑부대.
적진 깊숙이 돌파해 들어가는 전격전
복잡한 전선에 사용시 아군 피해 우려 또 하나의 가설은 전술적 측면을 짚는다. 독일은 2차대전 때 전격전(Blitzkrieg)을 진행했다. 기갑부대로 적진을 빠르게 돌파해 적의 전열을 흐트러트리면서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점령해가는 전법이다. 이렇게 전선이 단순하게 양분되지 않는 양상에서는 화학무기를 함부로 쓰면 아군까지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이 가설의 논리다. 하지만 이 역시 패망의 길을 간 독일이 끝내 화학무기를 쓰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부족해 보인다.
윈스턴 처칠.
독일군이 쓰면 연합군도 맞대응 뻔해
더 큰 보복 가능성이 ‘절제’시켰을 것 마지막으로 좀 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바로 보복에 대한 우려다. 전쟁 말기로 갈수록 연합군의 공군력은 독일을 압도했다. 독일이 화학무기를 쓰면 연합군도 곧장 보복에 나설 게 뻔했다. 히틀러의 맞수인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언제든 화학무기를 쓸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처칠은 전쟁장관을 할 때인 1919년 “가스를 사용하는 것에 왜 이렇게들 까다롭게 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2차대전 때도 여차하면 화학무기를 쓰겠다는 투였다. 1943년 독일군이 동부전선의 우크라이나 도네츠분지에서 화학무기를 쓸 것이라는 첩보를 듣자 “독일이 러시아인들에게 가스를 쓰면 우리도 가능한 한 최대 규모로 독일 도시들을 가스로 덮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처칠은 “가스는 폭발력이 강한 폭탄보다 관대한 무기이며, 다른 어떤 전쟁 수단보다 적은 인명 손실로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화학무기를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과 소련 양 진영이 누군가 핵무기를 먼저 쓰면 다른 쪽도 보복할 것이기에 결국 냉전이 열전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상호확증파괴’ 논리라는 게 있다. 히틀러도 이와 비슷한 차원의 고민 끝에 절제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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