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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분쟁지역 여성들에겐 ‘남편 어디 갔냐’ 묻지 마세요”

등록 2017-06-15 19:29수정 2017-06-16 01:44

【짬】 국제적십자위원회 미얀마 대표단장 위르크 몬타니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요르고스 요르간타스(왼쪽) 대표와 위르크 몬타니(오른쪽) 미얀마 대표단장.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요르고스 요르간타스(왼쪽) 대표와 위르크 몬타니(오른쪽) 미얀마 대표단장.
“남편은 어디 있냐고요? 어떻게 알겠어요.” 지난 8일 서울 중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위르크 몬타니(52) 국제적십자위원회 미얀마 대표단장이 되물었다. 그는 50년 넘게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 북동부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던 참이었다. 분쟁으로 실향민이 된 여성이 적십자의 도움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분쟁지역에서 여성들에게 ‘남편 행방’은 가장 비상식적인 질문이라고 했다. 몬타니 단장은 “남편은 죽었거나 어디선가 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몬타니 단장과 지난 5월 새로 부임한 요르고스 요르간타스(50)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도 함께했다.

1996년부터 적십자위원회에서 활동한 몬타니 단장은 르완다, 레바논 등을 거쳐 2013년부터 미얀마에서 구호활동을 맡고 있다. ‘미얀마 분쟁’은 국제적으로 서부 라카인주에서 소수 무슬림인 로힝야족을 불교도들이 탄압하는 문제만 주로 알려졌다. 몬타니 단장은 “로힝야족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우리도 라카인주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더 오래되고 복잡한 북동부 분쟁은 너무나 관심을 받지 못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미얀마 북동부 카친주, 샨주 등에서는 20여개의 무장단체가 난립해 50년 넘게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미얀마 국내 실향민이 10만명 이상 발생했고 최근 몇년 동안 10만명가량의 주민이 인근 타이로, 수천명은 중국으로 피난을 간 것으로 추정된다.

몬타니 단장은 “이 지역 무장단체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중앙정부와 싸우기도 한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목재 등 풍부한 이 지역 자원의 개발 수익을 중앙정부가 독점해 자신들이 소외됐다는 이유로 무장투쟁을 벌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각 무장단체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정부가 일부 단체와 협상에 성공하더라도 다른 단체는 따로 움직이는 등 분쟁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북동부 20여개 무장세력 난립
50년 넘는 분쟁으로 실향민 수십만명
“남성은 대부분 죽거나 전쟁터 내몰려”

가족 잃고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들
“끔찍한 환경 강인한 생존의지에 감동”
한국인들에 인도주의 활동 지원 당부

적십자위원회는 미얀마에서 식량, 의료 지원 등 긴급구호 외에도 생계수단 마련 등 장기적 구호에 힘쓰고 있다. 다리가 절단된 부상자에게 의족을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얀마 보건부와 함께 대형 재활센터를 지어 장기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실향민들에게도 사업 아이디어를 함께 의논한 뒤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종잣돈’을 마련해준다. 앞서 언급한 홀로서기 실향민 여성도 2년 전 200달러 남짓의 종잣돈을 지원받아 교복을 짓거나 수선하는 등 바느질 사업을 시작해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몬타니 단장은 “농촌 출신 실향민들은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할 만큼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실향민의 빈곤 악순환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무력충돌이 끝난다 해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미 파괴된 고향엔 지뢰 등 위험한 무기들이 가득하다”며 분쟁 실향민에 대한 장기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5년 이상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을 두루 확인한 요르간타스 대표와 몬타니 단장은 분쟁의 현실은 우리가 접하는 끔찍하고 처참한 보도사진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몬타니 단장은 “그 사진 역시 분쟁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포착한 분명한 현실이다. 하지만 분쟁은 그 전후에도 지속된다. 사진은 한순간이지만 그 순간 자식을 잃었다고 생각해보라. 그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물론 분쟁 현장에 끔찍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분쟁 생존자의 ‘강인함’에 감탄한다고 했다. 몬타니 단장은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내려는 생존자들의 강인함과 회복력도 있다”고 말했다. 요르간타스 대표는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를 키우기 위한 계획을 세워 제시한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리아나 예멘 등 무력충돌이 극심한 지역에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이 오히려 가족과 헤어져 일하고 있는 적십자위원회 활동가의 슬픔을 ‘위로’하는 사례도 있다.

정세가 급변하는 지역이다 보니 감옥에 갇힌 반정부세력으로 만났던 이를 정부 고위관리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가택연금 상태였다가 풀려나 현재 미얀마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가 대표적이다. 요르간타스 대표는 “제네바 협약에 근거해 수감자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지 감시하는 보호활동은 적십자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어떤 나라의 외교부 장관을 만났더니, 그가 ‘당신을 안다. 내가 감옥에서 다쳤을 때 적십자위원회에서 치료해주지 않았냐’며 호의적 태도를 보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는 2015년 문을 열고 한국인에게 지구촌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알리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는 별개 기구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한국사무소에 취임한 요르간타스 대표는 “한국은 분쟁지역이 아니지만, 인도주의 활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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