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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요르단, ‘성폭행범과 결혼하라 법’ 역사적 폐지

등록 2017-08-02 11:58수정 2017-08-02 21:47

성폭행 했더라도 피해자와 결혼하면 형사소추 면해
1일 하원서 폐기…조만간 상원·국왕도 폐기 찬성할 듯
요르단 하원에서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형사소추를 면할 수 있게 하는 법이 폐기된 1일(현지시각), 의원들이 법조항 폐기에 찬성하며 손을 들고 있다. 암만/ ’평등 지금’ 요르단 지부 누리집 갈무리
요르단 하원에서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형사소추를 면할 수 있게 하는 법이 폐기된 1일(현지시각), 의원들이 법조항 폐기에 찬성하며 손을 들고 있다. 암만/ ’평등 지금’ 요르단 지부 누리집 갈무리
요르단 성폭행범한테는 면책의 통로, 피해 여성한테는 강제 결혼의 올무였던 이른바 “네 성폭행범과 결혼하라”(형법 308조) 법이 폐기됐다. 요르단 하원이 법을 폐기하기로 했고, 조만간 상원을 통과해 압둘라 2세 국왕이 서명하리라 전망된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1일 요르단 하원이 악명높은 ‘성폭행범 결혼 면책법’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요르단 의회는 악법을 폐기하는 방안과 개정하는 방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결국 성폭행범한테 어떤 빠져나갈 구멍도 주지 않는 ‘역사적인 큰 걸음’을 내딛기로 결정했다.

요르단에서는 성폭행범한테 최대 7년형을 선고하며, 피해자가 15살 미만이면 사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3년 이상 결혼 상태를 유지하면 성폭행범을 형사소추하지 않고 면책해주는 ‘구멍 조항’을 둬 여권 운동가들과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요르단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10~2013년 300건의 성폭행 사건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159명의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해 처벌을 면했다. 요르단에서는 ’성’과 관련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고 피해자가 명예살인을 당하는 악습까지 남아있는 탓에, 실제 성폭행 사건 숫자는 보고된 숫자보다 훨씬 많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요르단에서 지난해 기소된 여성 살해 사건 36건 가운데 8건이 명예 살인이었다.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이 인터뷰한 요르단의 한 여성 헤어디자이너(49)는 “법 폐지 소식을 듣고 기뻤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무너졌다”고 양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이 여성의 딸은 13살 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다. 주정부는 딸을 위기청소년 쉼터로 데려갔다. 딸이 쉼터를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성폭행범과 결혼하는 것 뿐이었다. 헤어디자이너는 “딸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딸을 위해 결혼시킬 수밖에 없었다. 딸은 모두로부터 위협받고 있었다”며 “내 딸을 위한 정의는 어디 있냐?”고 하소연했다.

페미니스트 캠페인 그룹인 ‘지금 평등’에서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담당하고 있는 수아드 아부 다예는 <인티펜던트>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순간을 살고 있음을 느낀다”며 “그간의 캠페인이 보상 받았고, (이 법을 폐기하지 않은) 나머지 지역에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 성폭행범과 결혼하라” 법은 중동의 과거 부족사회 폐습에서 비롯됐다. 부족 여성이 다른 부족 남성한테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수치로 여겨, 명예살인을 하거나 성폭행범과 결혼시켰다.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이 수년간 이 법을 집중 타깃으로 삼아 캠페인을 벌인 덕에, 이집트와 모로코, 이번에 요르단 등에선 폐지됐다. 그러나 레바논·시리아·리비아·쿠웨이트·이라크·바레인·팔레스타인 등 중동 국가와 동남아시아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및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 남아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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