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각) 의회 불신임안 투표가 부결된 뒤 수도 케이프타운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케이프타운/ AP 연합뉴스
제이컵 주마(75)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다. 2009년 취임 이후 불신임·탄핵안을 이겨낸 8번째 기사회생이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벌였던 명예는 지워진 지 오래고, 이제 온갖 부패와 추문으로 얼룩진 ‘노욕’만 남았다.
<뉴욕타임스> 등은 8일 남아공 의회가 주마 대통령 불신임 안건을 찬성 177표, 반대 198표, 기권 9표로 부결시켰다고 보도했다. 의회는 전체 400석으로, 과반이 찬성해야 불신임안이 가결된다.
민주동맹(DA)과 경제자유전사(EFF) 등 야당은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 가장 부패한 개인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며 여당 의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249석을 차지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아직 ‘주마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방송으로 생중계된 의회 토론에서 여당 의원들은 “주마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은 남아공에 불안정하고 위험한 전례를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여당에서도 차마 주마의 부패와 무능 자체를 옹호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지난해 불신임안 투표 때보다 이탈 표가 많이 나와 주마의 정치적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주마는 가난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도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7살에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에 투신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1994년 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2007년 당대표로 선출됐고, 2009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 이어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친기업적인 전임자 타보 음베키와 달리 가난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리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온갖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판 대상이 됐다. 그는 6번 결혼해 현재 4명의 아내와 21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혼외자도 있다. 2016년에는 호화 사저 개·보수에 국고 수백만달러를 유용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국고를 토해냈다. 지난해 말부터는 인도계 재벌 굽타 일가와 관련된 부패 스캔들로 야당과 여론의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데, 굽타와 주마의 유착 관계를 조롱해 ‘줍타’라는 합성어까지 만들어졌다. 남아공의 실업률은 27.4%까지 치솟았고, 공공부채율과 범죄율이 높아지는 등 삶의 질도 낮아지고 있다.
두 번째 임기는 2019년 끝나지만, 오는 12월 아프리카민족회의 당대표에서는 물러나게 된다. 이날 불신임 투표에서 여당 이탈 표가 많이 나오면서, 차기 당대표로 거론되는 주마의 이혼한 첫 부인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 전 내무장관의 입지가 약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마가 퇴임 뒤 부패 수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방패막이로 전 부인을 밀고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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