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현지시각)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후루마 지역에서 대선 결과 불복 시위에 참가했던 한 야당 지지자가 경찰의 총에 맞아 다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케냐에서는 지난 8일 대선 이후 정부 추산 24명, 야권 추산 100여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나이로비/EPA 연합뉴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내전 수준의 참사가 빚어진 케냐에서 또다시 대선 결과를 둘러싼 유혈 충돌이 악화되고 있다.
<비비시>(BBC) 방송 등 외신은 12일 “케냐 보안군에 의해 약 100명이 숨졌다”는 제임스 오렝고 야권동맹연합 나사(NASA) 최고위원의 주장을 전했다. 반면 케냐 국가인권위원회는 수도 나이로비에서 17명이 숨지는 등 경찰 총격으로 모두 2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서부 키수무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는 물론 실탄을 쏘고, 주민의 돈을 훔쳤다는 증언이 나왔다. 야권 단일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의 선친이자 독립 영웅인 자라모기 오깅가 오딩가의 이름을 딴 병원에 총상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데이비드 오코트(32)는 목에 총상을 입었다. 동생 마틴 오코트는 “경찰차가 다가오더니 우리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고 말했다. 모지스 오두오르(28)는 “경찰이 지갑과 돈과 휴대폰을 가져가면서 신분증만 도로 던져놓고 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키수무의 경찰 당국자인 제벨 응게레는 답변을 거부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선거를 폭동의 구실로 삼고 있다”며 “한 지역 슈퍼마켓에서 기물이 파손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케냐 선거관리위원회는 11일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이 54.3%를 득표해, 44.5%에 그친 오딩가를 제쳤다고 공식 발표했다. 야당은 이를 “국가 테러”로 규정하고 “속임수” 결과를 뒤집겠다고 공언했다.
케냐에 참관인 8300명을 배치한 선거감시그룹(Elog)도 케냐타 대통령의 득표율을 54%로 집계했다. 그러나 야권이 선거감시그룹의 독립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어 중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야권은 사법부도 불신하고 있어 개표 조작 의혹을 법정에서 다툴 의지도 없다.
케냐의 빈부 격차 역시 선거를 내전으로 비화시키는 토양 구실을 하고 있다. 거센 불복 시위가 일어난 곳은 나이로비와 키수무의 빈민촌이다. 전통적으로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이면서, 집권 세력으로부터 차별받는 곳이다. 주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주식인 우갈리(옥수수를 갈아 만든 백설기 같은 음식)를 사거나 자녀 등록금을 낼 여력도 없다. 키수무의 스티브 오둔도(22)는 12일 <뉴욕 타임스>에 “우리는 배고프고 화났다”며 반정부 시위가 단지 선거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내비쳤다.
케냐에서는 2007년 대선 뒤 두 달간 최소 1100명 이상이 숨지고 60여만명이 피난을 떠났다. 2013년 대선 때도 300여명이 숨졌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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