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9일 미얀마 와이캉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가려고 나프강을 건너고 있다. 와이캉/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석달 만에 처음으로 로힝야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얀마 지도부와 로힝야 난민을 만나기로 했다. 로힝야족 탄압을 주도하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와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압박 가능성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22일 성명을 통해 “지난 8월25일 (로힝야족 반군 단체인) 아라칸로힝야 구원군(ARSA)의 (미얀마 경찰서) 습격 사건을 비난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어떠한 도발도 그에 뒤이은 참혹한 잔혹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들에 대한 신중하고 철저한 분석을 했다”며 “(미얀마) 북부 라킨주에서 일어난 상황은 로힝야에 대한 인종청소에 해당하는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틸러슨 장관은 미얀마 군부를 타깃으로 한 제재도 언급했다. 그는 “이런 잔혹 행위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미국은 그동안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진행해온 결의 등을 지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책임 규명을 위해 믿을 만하고 독립적인 조사 작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가능한 제재를 포함, 미국 법에 근거해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제재와 관련해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미얀마 정부 관계자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배제하고 있다”며 “수십년간 군부 독재 이후에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는 미얀마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틸러슨 장관의 성명은 지난 15일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과 진행한 공동기자회견 내용보다 한층 강경해졌다. 당시 틸러슨 장관은 국제사회의 조사를 촉구하면서도 인종청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미얀마 군의 행위가) 인종청소 기준에 맞는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8월 이후 62만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떠났다. 현재 미얀마에는 전체 로힝야족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휴먼 라이츠 워치’와 ‘세이브 더 칠드런’은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 여성과 소녀들을 상대로 저지른 집단 성폭행 등 반인륜 범죄를 폭로한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국제사회가 로힝야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할 경우 미얀마에 대한 무기 금수와 군사 교류 제한에 데 효과적이리라 판단하고 있다.
한편 <로이터> 통신은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얀마 지도부와 로힝야 난민을 만날 예정이라고 22일 보도했다. 교황은 28일 수도 네피도에서 수치와 만난 뒤 30일 양곤에서 미얀마 군의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만나기로 했다. 1일에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리는 종교 간 회의에서 로힝야 난민들을 면담할 계획이어서, 평소 로힝야 사태를 우려해온 교황이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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