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선언을 발표한 지 사흘 뒤인 지난 9일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에서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스라엘 보안군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나블루스/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선언을 한 뒤, 10일까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로 모두 4명이 숨지고 1천여명이 다쳤다. 국제사회는 트럼프가 중동에 던진 불똥을 끄려 미국과 이스라엘을 배제한 채 중동 평화 유지 해법에 골몰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10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트럼프 대통령의 워싱턴 초청을 거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아바스 수반이 성탄절 전으로 예정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방문 때 펜스 부통령도 만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을 더 이상 중동 평화협정의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처다.
트럼프가 내팽개친 중동의 균형추 역할을 대신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아랍권 22개국이 모인 아랍연맹은 9~1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을 철회하라는 결의안을 내놨다. 아랍연맹은 유엔 안보리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국제 결의 위반이고 법적 효력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비비시>(BBC) 방송은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트럼프 행정부 비판에 동참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앞서 게브란 바실 레바논 외교장관은 9일 아랍연맹 외교장관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반드시 선제 조처를 취해야 한다”며 “외교부터 시작해 정치적 제재를, 이어 경제·금융 제재까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프랑스·이집트 등 8개 이사국의 요구로 8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도 14개 이사국이 한목소리로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을 비판하며 미국을 고립시켰다. 국제 무대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좀처럼 내지 않는 일본의 벳쇼 고로 유엔 주재 대사도 “(이-팔 2개국 해법을 지지하는) 일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예루살렘의 지위는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14 대 1로 공격 당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수년간 유엔은 난폭할 정도로 전세계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적개심의 최전선 중 하나였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웨덴 등 유럽 5개국 대사는 안보리 긴급회의 뒤 별도의 공동성명을 통해 트럼프의 조처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미국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예루살렘의 지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주도하는 최종 지위 협상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 이후 8~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 등 30여곳에서 반미·반이스라엘 시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4명이 숨지고 1천여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8일 로켓포 2발을 자국 영토 내로 발사한 데 대응해 9일 새벽 하마스의 군시설을 전투기로 공습했다. 팔레스타인 쪽은 공습으로 2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인정을 하든 말든 현실적으로는 예루살렘의 지위에 큰 변화가 없는데다, 1~2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봉기)의 피로감 및 리더십·전략 부재 등이 겹쳐 ‘3차 인티파다’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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