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확대회담 진행 모습. 이정아 기자
미 백악관 소셜미디어 담당자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 12일 북-미 정상회담 업무 오찬 시작 전 모습. 사진 @Scavino45 계정 갈무리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확대회담에서 업무 오찬(Working lunch)으로 이어지면서 외교 실무진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회의 진행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 소련 냉전 말기에 군축협상 타결을 이끈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87년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업무 오찬은 기밀해제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 흥미롭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2일(현지시각) 낮 12시35분께 싱가포르 센토사섬 회담장에서 업무 오찬을 시작했다. 업무 오찬 메뉴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언급해 기대를 모았던 ‘햄버거 오찬’ 대신에 소갈비와 대구조림 등이 주요 요리로 정해졌다. 앞서 미국을 상징하는 패스트푸드인 햄버거가 오찬 메뉴로 나오는 것 자체가 북미 교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전망과 해석이 나왔으나, 우리 전통요리인 오이선 등 양국 입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메뉴가 선별됐다.
업무 오찬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진행하거나 논의하는 와중에 먹는 점심을 이른다.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은 ‘정상회담이 업무 오찬과 함께 열렸다’(The summit opened with a working lunch) 같은 예문을 제시한다. 이날 업무 오찬엔 실무협상을 주도한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 매슈 포틴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등이 함께할 것이라고 백악관이 밝혔다. 북한 쪽에선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성 김 대사와 호흡을 맞춘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87년 12월 데탕트로 가는 첫번째 결실을 얻었던 워싱턴 정상회담 때 백악관 집무실에서 첫번째 만남을 하는 모습. 사진 레이건 도서관&박물관 누리집 자료사진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88년 12월 미 뉴욕 방문 때 점심을 함께하는 모습. 사진 레이건 도서관&박물관 누리집 자료사진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냉전시대 군축협상을 위해 1985년 스위스 제네바,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정상회담을 연 데 이어, 1987년 12월 고르바초프가 미 워싱턴 백악관을 사상 처음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는 등 ‘데탕트’(해빙)를 끌어냈다. 첫번째와 두번째 정상회담은 성과가 없거나 결렬로 끝났지만 워싱턴 정상회담에선 중거리 핵 폐기 조약 체결에 도달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는 회담 둘째 날인 12월10일에 오전 정상회담에 이어 곧바로 핵심 참모들과 함께 하는 업무 오찬 형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오찬에 대한 기록은 2000년 기밀해제로 자세한 내용이 공개됐다. 백악관 웨스트 윙 집무실(Oval ofiice)에 열린 정상회담에서 이어진 업무 오찬은 이날 낮 12시40분부터 2시10분까지 1시간30분간 진행됐는데, 장소는 백악관 ‘패밀리 다이닝룸’이었다. 이는 정상들이 만날 때 국빈 만찬장보다 좀 더 친밀감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두 정상은 점심을 먹으며 군축 문제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 국지적 갈등에 대한 업무 논쟁 등을 했지만 오찬 말미에 이르러선 서로 농담을 한두가지 주고받고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 등 자축과 웃음이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이 자리에선 양국 정상이 관료제의 문제점에 공감하자 레이건 대통령이 2차 대전 시절 일화를 언급했다. 군에서 쓸모없는 서류로 꽉 찬 캐비닛을 비우느라 문서를 파기하게 해달라는 공문을 올려보냈는데, 다시 파기하란 공문이 내려오는데 어찌나 승인 단계가 많은지 그때 오간 공문들이 또다시 파기할 서류로 도로 쌓였다는 얘기였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보드카 빈 병이 오히려 보드카보다 더 비싸지는 불합리한 러시아 사업에 관한 농담을 꺼내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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