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일반

평양이나 워싱턴에선 ‘세기의 포옹’ 할 수 있을까

등록 2018-06-12 22:18수정 2018-06-12 23:49

오전 9시 첫 만남서 12초간 악수
회담 뒤 트럼프 “곧 서명” 깜짝 공개
한국어·영어 문서 2통에 각각 사인
서명 때 역시 동생 김여정이 보좌
퇴장 땐 번갈아 등에 손대며 친근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세기의 회담’이라 불린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공개하는 공동성명 서명식장의 침묵이 길어지자 행사장엔 미묘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의 모든 행사를 마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배석자를 대동하지 않은 짧은 산책을 하며 “(북-미 공동성명에) 곧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예고되지 않았던 ‘깜짝’ 일정 공개였다. 이후 한 시간 가까이 침묵이 이어지자, 북-미가 공동성명의 문구 조정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숨 막힐 듯한 긴장을 깨뜨린 것은 김 위원장의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오후 1시34분(한국시각 오후 2시34분) 서명식장에 들어와 테이블 위에 합의 문서를 놓고 나갔다. 그로부터 다시 4분 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 미국 쪽 인사들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1시40분 행사장의 문이 열리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테이블 뒤엔 북-미의 극적인 화해를 상징하듯 여러 개의 인공기와 성조기가 엇갈려 놓여 있었다.

착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우리는 매우 중요한 문서에 서명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문서는 굉장히 포괄적인 문서다. 오늘 훌륭한 회담을 했고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덮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선언을 하게 된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질의응답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한 북-미 정상이 어엿하게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듯한 모습이었다. 문서에 서명하는 김 위원장의 옆을 지킨 것은 이번에도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었다.

북-미 두 정상은 이에 앞서 오전 9시4분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회담이 열리기 때문인지 두 정상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 손을 맞잡았다. ‘세기의 악수’는 12초 동안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곳곳에서 파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오전 9시16분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운을 뗀 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다.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1948년 10월 건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70년 동안 견뎌낸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심오한 발언이었다. 단독회담은 애초 예정됐던 45분보다 10분 정도 짧은 38분 만에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 “1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대일 회담을 마치고 오전 9시54분 시작된 확대정상회담엔 북한에선 김영철 부위원장,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미국에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켈리 비서실장,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오전 11시35분에 시작된 업무오찬의 메뉴는 소갈비·탕수육·볶음밥 등이었다. ‘기대’했던 햄버거는 등장하지 않았다.

북-미는 1953년 7월27일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을 끝내는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11분 동안 이어진 조인식에서 양국 대표는 한국어·영어·중국어 세 나라 말로 된 협정문서 정본 9통, 부본 9통에 각각 서명을 마쳤다. 악수도, 목례도, 관례적인 합동 기념촬영도 없는 증오와 불신으로 가득 찬 행사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악수하고 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악수하고 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이후 65년 동안 이어진 굴곡의 시간들을 지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어·영어로 기록된 각각 2통의 문서에 서명한 뒤 “이런 만남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노력했고, 많은 준비 작업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느냐는 질문에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서명을 마치고 퇴장하며 김 위원장이 오른손을 뻗어 트럼프 대통령의 등에 손을 댔다. 오래 작심한 듯한 머뭇거리는 동작이었다. 몇 걸음 더 나아간 트럼프 대통령도 왼손을 들어 김 위원장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쉽게도 ‘세기의 포옹’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완성하는 평양 또는 워싱턴의 2차 회담 땐 웃으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둘의 모습을 보길 기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축하의 박수를 건네는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했으면 한다.

길윤형 기자, 싱가포르/노지원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