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혼자 다스쿠 교수. 노벨상 위원회는 이들의 수상 이유로 “면역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을 제어하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암 치료법을 개발했다”는 점을 꼽았다. 노벨위원회 제공
면역항암제 개발을 이끈 제임스 앨리슨(70) 미국 텍사스대 앤더슨암센터 교수와 혼조 다스쿠(76) 일본 교토대 의대 특별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은 26명(미국 국적 취득자 2명 포함)째, 생리의학상 부분은 5명째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노벨위원회는 1일 “수상자들은 면역 억제 물질을 발견해 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전략을 개발했다”며 “이들의 중요한 발견이 암에 대한 우리의 싸움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앨리슨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5년간 ‘T-세포’(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백혈구)에 있는 ‘CTLA-4’ 단백질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이 단백질이 T-세포 활동을 억제해 면역력을 낮추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이 단백질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들어 T세포의 암 살상력을 크게 키우는 데 성공했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했다면, 새 치료법은 T-세포의 면역 기능을 강화해 암세포를 물리치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외과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에 이은 4번째 암 치료법의 길이 열렸다. 그의 연구는 면역항암제 ‘여보이’ 개발로 결실을 맺었다.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 노벨위원회 제공
혼조 교수도 1992년 T-세포 표면에서 ‘PD-1’이라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7년 만인 1999년 이게 면역 억제 구실을 하며, 암세포가 이를 활용해 공격을 피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로 PD-1의 작용을 억제해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후 일본 제약사 오노약품공업과 미국 제약사 브리스틀마이어스 스퀴브는 사람이 본래 갖고 있는 면역력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치료제 ‘옵디보’를 개발했다. 이 약은 피부암(흑색종)과 폐암 치료에 널리 쓰인다. 지미 카터(94)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피부암이 뇌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혼조 교수의 연구에 기초해 만든 약으로 이듬해 완치됐다고 밝혔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도 흑색종(피부암) 치료제로 면역항암제 ‘여보이’와 ‘옵디보’의 사용을 2014·2015년 각각 허가했다. 획기적 암 치료법으로 평가받는 면역항암제는 부작용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2년 만에 노벨상 수상자를 또 배출한 일본은 흥분하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인으로서 대단히 자랑스럽다”며 혼조 교수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요미우리신문>은 “노벨상 혼조 교수”라고 제목을 단 호외를 뿌렸다.
일본 기초과학의 저력에도 다시 관심이 모아진다.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 학자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해온 것은 남들과 다른 길을 가라는 것이었다.
제임스 앨리슨 미국 텍사스대 앤더슨암센터 교수. 노벨위원회 제공
2014년 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라”고 말했고, 2015년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무라 사토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다 보니 그동안 실패가 더 많았다”는 말을 남겼다. 2016년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도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찾는 기쁨”을 말했다. 혼조 교수도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스승한테 “유행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흥미와 사물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혼조 교수는 교토대 의학부 졸업 뒤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카네기연구소 등에서 면역학을 연구했다. 오사카대 의학부 교수를 거쳐 지금은 교토대에 재직한다. 그는 수상자 발표 뒤 기자회견에서 “내 연구로 심한 병에서 회복돼 건강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어떤 상보다 기뻤다. 여기에 노벨상까지 받다니 난 매우 운이 좋은 인간”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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