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2016년 3월 재판을 받으러 법정으로 출두하고 있다. 평양/ 교도 연합뉴스
북한에 억류됐다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유족들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미국 법원은 북한이 유족들에게 5억113만달러(약56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24일 “북한은 웜비어에 대한 고문, 억류, 재판 외 살인과 그의 부모에 입힌 상처에 책임이 있다”며 북한은 웜비어의 부모인 프레드와 신디 웜비어에게 손해배상금 4억5000만달러, 위자료·치료비 등으로 5100만달러 등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버릴 하월 판사는 이 판결문에서 “5일 간 단체 북한 관광을 떠나기 전, 버지니아 대학 3학년이던 오토 웜비어는 건강하고 큰 꿈을 꾸는 영리하고 사교적인 학생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정부 관리들에게 그를 넘겼을 때 앞을 못 보고, 귀가 먹은 뇌사 상태였다. 북한은 웜비어의 고문, 납치, 사법절차에 따르지 않은 살인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웜비어 부모는 지난 10월 북한 정부가 “아들을 고문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금과 위자료 등으로 11억달러(1조2600억원)의 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웜비어는 2016년 1월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북한에서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3월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된 뒤 2017년 6월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됐지만 엿새 만에 숨졌다.
의료진들은 웜비어가 왜 혼수상태에 빠졌는지는 분명하진 않지만, 수감 중에 뇌손상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사고 원인을 식중독이라 해명해 왔다. <에이피>(AP) 통신 등 미국 내 북한 자산이 거의 없어 유족들이 북한에게 배상금 지불을 강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전했다.
이 판결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미는 지난 6월 첫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처를 둘러싼 이견으로 대화는 장기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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