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냉전 말기 미-소 간 핵 긴장을 크게 완화시킨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과 러시아 간 협상이 상호 비난전으로 끝났다. 미국이 조약 위반 사항을 시정하라며 러시아에 제시한 60일의 ‘최후통첩’ 기한이 보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조약은 파기 수순으로 접어들게 됐다.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협상엔 미국에선 앤드리아 톰슨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러시아에선 대미 관계와 군비 문제를 담당하는 세르게이 랍코프 외교차관이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은 양국이 파기 위기에 놓인 조약의 이행 조건을 논의하려고 만났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성과 없이 회의장을 떠났다고 전했다.
톰슨 차관은 회담 후 성명을 통해 “러시아는 계속해서 조약을 위반하고 있고, 어떻게 조약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이행할지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회담이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랍코프 차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러시아는 조약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지만, 미국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면서도 “러시아는 최후 통첩을 하는 대신 상호 존중 아래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중거리핵전력조약은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한 군축협정으로 사거리 500~5500㎞인 지상 발사형 중·단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 조약으로 소련이 서유럽을 탄도미사일로 직접 타격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가 남부 카푸스틴 야르 지역에서 이 조약에 저촉되는 SSC-8 순항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해왔다며 러시아의 조약의 위반을 주장해 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급기야 지난달 4일 러시아가 60일 내에 조약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지 않으면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미국이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은 러시아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날리는 동시에 이 조약의 밖에 있는 중국을 끌어들이는 새 군축의 틀을 짜려는 목적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외신들은 양국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조약이 파기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역시 강경한 입장을 쏟아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조약에서) 탈퇴하면 러시아도 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고, 지난달 26일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를 무력화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아방가르드’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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