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17일(현지시각) 워싱턴 인근 덜레스공항에 도착해 수행원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 방송 화면 갈무리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2박3일 일정에 돌입했다. 김 부위원장의 방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 등 향배를 가를 중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이날 저녁 6시32분 베이징발 유나이티드항공 808편으로 워싱턴 인근 덜레스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공항 영접을 받은 뒤 준비된 차량을 타고 워싱턴 시내 듀폰서클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번 방미는 지난해 11월 북-미 고위급회담이 무산된 뒤, 올 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와 4차 방중에 뒤이어 이뤄진 것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에 대해 간접적으로 모종의 ‘결단’을 주고받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내놓을 답변이 무엇이냐다. 지난해 6월1일 백악관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며 첫 북-미 정상회담을 정상궤도에 올린 김 부위원장은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친서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8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고위급회담을 한 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앞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13일께 인편으로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김 부위원장이 이번에 가져온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답을 할 차례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발표할지가 이후 북-미 대화를 가늠할 잣대다. 미국 언론은 이르면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2~4월 사이 베트남 하노이와 다낭, 타이 방콕 등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김 위원장이 설 연휴를 포함한 2월4~8일 이후 베트남을 국빈방문할 예정이라고 베트남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날짜·장소를 발표한다면, 이는 두 정상이 친서 등을 통해 신뢰를 재확인했다는 의미다. 또 비핵화와 상응 조처에서도 큰 틀의 합의를 봤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이번 고위급회담에 뒤이어 실무회담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주말 이후 비건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첫 접촉을 하고 비핵화와 상응 조처에 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13일 워싱턴을 방문해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을 만나 북-미 협상에 관해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위원장도 이번에 해스펠 국장을 만난다.
조만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장소가 발표되지 않는다면, 비핵화와 상응 조처에 관한 양쪽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면서 정상회담 일정도 늘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의 워싱턴 도착일에 새로운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MDR)를 발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압박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외교 소식통은 “우연의 일치일 뿐 북-미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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