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쇠퇴를 겪어온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과의 연대로 석유시장 지배력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의 오펙 회원국들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비오펙 10개 산유국과의 공식적 동반자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오펙 관리들을 인용해 5일 보도했다. 이들은 양쪽이 18일 오펙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를 논의하고 4월께 협정을 맺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는 셰일 에너지 개발 및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저유가 정책으로 이완된 석유 가격 통제력 등 위상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오펙과 비오펙 산유국들이 동맹을 형성하면 세계 석유시장의 지형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오펙과 비오펙 산유국들은 지난해 12월 감산에 합의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왔다. 현재 오펙 회원국들은 세계 산유량의 40%가량을 담당한다.
사우디와 러시아 등은 2016년 말에도 석유 값 반등을 위한 합의를 했는데, 이는 수십년 만에 러시아가 오펙과 협력한 첫 사례다. 당시 양쪽은 3년간 정례적으로 만나면서 산유량 등을 조율하기로 했다. 올해로 합의 시한이 종료되자, 보다 강화된 협력 관계를 추진하는 것이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세계 1·2위 석유 수출국이다. 석유 의존도가 높은 두 나라는 저유가를 재정에 대한 큰 압박으로 여긴다.
사우디는 러시아가 정식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석유 생산국 기구 창설까지 제안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실력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한 이 제안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도 적극 찬동했으나 이란을 비롯한 다른 오펙 회원국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 제안에 따른 새 기구는 사우디와 러시아에 다른 회원국들보다 큰 권한을 부여하도록 설계됐다.
오펙 내에서는 이란 등이 비오펙 국가들과의 연대를 지나치게 강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산유국 동맹을 이끌며 영향력을 확장할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이란은 미국과 관계가 긴밀하면서 자국과는 적대적인 사우디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다. 이란은 석유시장 위기가 발생할 때만 14개 오펙 회원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10개 비오펙 산유국이 회동하는 형태의 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러시아 쪽은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러시아로서는 옛소련 공화국 등 비오펙 산유국들 사이에서 지금처럼 지도력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동시에 미국에 맞서 석유 가격에 대한 통제권을 쥐기 위해 오펙과의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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