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4 17:42
수정 : 2019.02.1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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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눈을 제외한 온 몸을 가리는 무슬림 전통복장인 아바야를 입은 채 사진을 찍고 있다.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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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민주당 상원의원, 애플·구글 CEO에 편지
“IT기술이 여성 감시와 억압에 쓰여선 안돼”
사우디 정부 도입 앱으로 여성 이동권 통제
여행지·범위 남성이 지정하고 출입국도 알려
HRW “모욕적…기업이 앱의 악용 감시해야”
애플·구글 “처음 듣는 이야기…들여다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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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눈을 제외한 온 몸을 가리는 무슬림 전통복장인 아바야를 입은 채 사진을 찍고 있다.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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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구글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이동권을 박탈하는 어플리케이션(앱)의 확산을 도왔다는 이유로 도마에 올랐다. 스마트폰 앱까지 이용해 여성 인권을 억누르는 사우디 정부에도 비난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등이 애플과 구글을 상대로 사우디 정부가 운용하는 앱 ‘앱셔’를 퇴출시키라는 요구를 하고 나섰다고 <시엔엔>(CNN) 등이 13일 보도했다.
미국 상원의 론 와이든 의원(민주)은 11일 애플의 팀 쿡,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에게 편지를 보내, 앱스토어(애플)와 플레이스토어(구글)가 “여성에 대한 끔찍한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와이든 의원은 “사우디 왕정이 여성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건 뉴스가 아니지만,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 정부의 가부장제를 촉진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신들이 앱스토어에서 그런 앱을 내려받도록 허용함으로써 사우디 남자들이 가족의 이동을 통제하는 걸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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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셔’의 여성 ‘피보호자’ 여행 허가 관련 페이지. 여성의 이름과 여권 번호, 여행지, 여행 기간 등을 기입하고 설정할 수 있게 설계됐다. 사진 출처: 인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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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셔’는 사우디 정부가 개발해 2015년 운용하는 포털로, 비자, 신분 증명, 교통 법규 위반 조회, 건강보험 등 광범위한 업무를 진행하는 수단이다. 문제는 여성들의 이동권을 부정하는 데도 악용된다는 것이다. 남성이 등록해놓은 아내와 딸 등 ‘피보호자’의 외국 여행 허가, 여행 날짜와 지역 등 범위 지정, 여행 취소 등을 이 앱을 통해 할 수 있다. 공항이나 국경에서 여권을 사용하면 문자메시지를 남성에게 보내주는 기능도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 포털 사용자가 1100만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우디에선 남성 ‘후견인’의 허가와 동행 없이는 결혼, 외국 여행, 취업 등을 할 수 없다. 여성의 자동차 운전도 수많은 여성 활동가들의 ‘위법’ 시위와 체포 끝에 지난해 6월에야 첫 면허증이 발급됐을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 개발된 ‘앱셔’는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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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도 운전면허가 발급된 지난해 6월 수도 리야드 근교에서 한 여성이 직접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있다. 리야드/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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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이동권 부정 등 여성 억압은 지난달 타이로 도피한 10대 여성이 “송환되면 남자 친척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트위터로 호소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그는 유엔까지 나선 끝에 캐나다로 망명할 수 있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앱셔의 사용은 사우디의 ‘후견인 제도’의 여성 차별 시스템의 실태와 진정한 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보여준다”는 논평을 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관계자는 “이 앱은 정말로 남자들을 위해 디자인됐다. 여성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모욕적”이라며 “사우디 정부는 신기술을 실질적인 시스템 개선이 아니라 구시대적 차별 통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애플과 구글은 어떤 정부가 운용하는 앱들이 인권 탄압이나 차별 강화에 악용되는지를 더 잘 감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미국 공영라디오 <엔피아르>(NPR)에 “처음 듣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가 된다면 분명히 들여다보겠다”며 대책을 마련할 뜻을 내비쳤다. 구글 쪽도 <시엔엔>에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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