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서열 3위’ 추기경 아동 성추행 유죄 평결

조지 펠 추기경이 26일 고개를 숙인 채 법원을 떠나고 있다. 멜버른/AFP 연합뉴스

오스트레일리아 법원 배심원단, 만장일치 유죄 판단
성폭력 문제로 세속 법원 심판대 선 최고위 성직자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 미국 추기경은 사제직까지 박탈

조지 펠 추기경이 26일 고개를 숙인 채 법원을 떠나고 있다. 멜버른/AFP 연합뉴스

가톨릭 사제들의 성폭력 파문 속에 교황의 바로 다음 직급인 추기경들이 세속 법정에서 유죄 평결을 받거나 사제직을 박탈당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법원이 22년 전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 펠(77) 추기경에게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했다고 26일 보도했다. 펠 추기경은 성추행과 아동학대 등 5가지 혐의에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이 평결은 지난해 12월11일에 나왔지만 법원이 공개 금지를 명령해 이제야 보도가 됐다. 펠 추기경의 유죄 평결 소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 내 약자들의 보호’를 주제로 전세계 고위 성직자들을 소집한 나흘간의 회의를 마친 직후에 나왔다.

이번 사건은 교황청 재정을 총괄하는 재무원장으로 바티칸 서열 3위이던 고위 성직자가 유죄 평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펠 추기경은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유죄 평결을 받은 최고위 성직자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유죄가 확정되면 수십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펠 추기경은 멜버른에서 대주교를 할 때인 1996년 12월 미사 시간에 밀실에서 당시 13살이던 성가대 소년 2명에게 강제로 제의용 포도주를 먹이고, 이듬해 초에는 성당 회랑에서 그 중 한 소년을 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그땐 내가 어려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몰랐다. 그게 정상적인 걸로 생각했다”며 “당시엔 누구에게도 이런 일을 말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펠 추기경은 줄곧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선고가 나오면 항소할 뜻을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펠 추기경의 변호인은 “공공장소에서 예복을 입은 채 성기를 노출하고 미성년자를 추행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미친 자들 뿐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배심원단 결정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자신들이 ‘합리적 의심’의 논리를 잘 구성했다며 무죄 평결을 확신했다고 <에이피> 통신은 전했다.

16일에는 교황청이 역시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를 받는 미국의 시어도어 매케릭 전 추기경(89)의 사제직을 박탈하는 초강경 조처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48년 전에 10대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7월 추기경 직위를 박탈당했으며, 이번엔 사제직까지 박탈당한 최고위급 성직자가 됐다.

앞서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세계 주교급 이상 고위 성직자 190여명을 소집한 ‘약자 보호’ 긴급회의를 마치면서 한 강론에서 “성학대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 행위”, “그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악마의 도구”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교황은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학대하는 것에 대한 전면전을 충심으로 호소한다”며 “교회에서 이런 범죄가 단 한 건이라도 발생한다면 극도로 엄격한 방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e-mail]